꽃가루 가격 인상에…올해도 암울한 배농사
2025년 03월 10일(월) 20:15
중국산 꽃가루 봉지당 4만원→6만원…인공수분 비용 30% 증가 예상
지난해 폭염 피해 직격탄 속 나주 등 배농가 “농사 또 망치나” 한숨만

8일 오전 나주시 노안면 배 과수원에서 김성보씨가 배 꽃순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 폭염 피해를 올해 만회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꽃가루 비용까지 치솟으니 빚만 남을 판이라 배농사를 접어야 할지 고민이네요.”

지난해 초가을까지 이어진 이례적인 폭염으로 농사를 망친 나주 지역 배 농가들이 올 봄에는 수입 꽃가루 가격 인상으로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중국산 꽃가루의 가격(20g 한 봉지 기준)이 지난해 4만원에서 올해 6만원으로 1.5배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에 꽃가루를 공급하는 중국의 배 꽃 생산량이 병해 문제 등으로 크게 감소하면서 채집량이 줄어든 것이 이유다.

또 중국 내 꽃가루 수요 증가와 검역 강화까지 겹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배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품종인 ‘신고배’는 자가수분이 되지 않아 인공수분을 해야하는데, 꽃가루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수입 꽃가루 가격 폭등으로 올해 인공수분 관련 비용이 전년 대비 3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폭염 피해로 큰 타격을 입었던 농민들은 “배 수확량과 수입은 줄어드는데 이상기후로 인해 영농 비용은 갈수록 늘어나니 농사짓기가 괴로울 지경이다”고 입을 모은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지난 8일 찾은 나주시 노안면 김성보(57)씨의 밭에는 검게 타고 문드러진 배들이 여전히 쌓여있었다. 지난 여름 폭염으로 배가 검게 그을리고 과육이 물러지는 ‘일소(日燒)’ 피해를 입은 배가 과수원 한켠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20년째 배 농사를 짓고 있는 김씨의 밭에서는 매년 25㎏ 짜리 2500상자를 수확했지만 지난해에는 1200상자를 수확하는 데 그쳤다.

보관 중이던 배에서도 추가 피해가 발견되면서 생산량은 평소의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김씨는 “창고에 보관했던 배도 상품성이 너무 떨어져 배즙으로도 사용하기 힘들 정도다. 지인들에게 닭 사료용으로 나눠 주려고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오는 4월 초 배꽃이 필 때를 대비해 방재작업에 나선 김씨는 “자잿값이며 각종 비용을 대출 받아 농사를 지었는데 일소 피해로 수확량이 절반 이상 떨어지니 빚만 1000만원 가량 남았다”며 “올해 농사로 손해를 만회해야 하는데 꽃가루 가격까지 오르니 비용부담이 너무 크다”고 울상을 지었다.

수입산 꽃가루 가격이 급등하면서 1만3200㎡(4000평) 규모의 밭농사를 짓는 김씨는 지난해 꽃가루를 구입하는데 160만원이 들었지만 올해는 240만원이 필요하게 됐다.

여기에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당까지 포함하면 인공수분 과정에만 400만~500만원이 든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지난해 배 가격이 1상자에 8만원 꼴로 높게 형성돼 아직 희망을 놓지는 않았지만, 이상기후로 배 품질이 악화돼 가격마저 떨어지면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우후죽순 늘어날 것”이라며 “지금도 대부분 농민이 고령인 상황인데 힘들기만하고 돈이 되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이 배 농사를 지으려하겠느냐”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주 특산품인 배 농사 포기를 고민하는 농민도 적지 않다고 농민들은 설명했다.

통계청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나주지역 배 재배면적은 약 1748㏊로 전국 재배면적(9394㏊)의 18%, 생산량은 20%를 점유하고 있다. 2024년 전국의 배 생산량은 17만 8000t으로 전년 18만 4000t보다 2.9% 감소했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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