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다시 본다 - 노경수 광주대 도시부동산학과 교수
2025년 01월 13일(월) 00:00
관람객 1300만 명이 다녀갔던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상황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비상 계엄령을 발동한 것이다. 부정선거와 자유민주주의의 국체를 전복하려는 반국가, 종북 세력들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언젠가 해야 하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지금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담화문을 보면 정부 문서라기보다는 거의 시정잡배의 막말 수준이다. 45년 전 전두환 쿠데타 세력들의 논리는 물론 표현까지 흡사하다.

평화롭기만 했던 서울의 밤하늘에 군 헬기를 띄우고 무장 군인을 국회에 투입했다. 이 시대착오적인 계엄으로 대한민국을 전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국가신뢰도와 국가경제는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민들은 혹 44년 전 광주처럼 유혈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TV 생중계를 지켜봐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윤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이 마음엔 들지는 않지만, 야당이 주장하는 대통령 탄핵 또는 하야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결정적 요건을 계엄선포로 윤 대통령이 스스로 완전히 충족시켜 준 것 같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선관위원장, 심지어 이재명 대표에 무죄 판결한 판사까지 체포하려고 하였다고 한다. 계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을 자극해서 공격을 유도하려 한 사전모의도 확인되었다. 초기에는 허술한 줄만 알았던 비상계엄이 시간이 지날수록 예상보다 치밀하게 준비되어 추진된 정황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조만간 만천하에 그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빈대만 잡을 수만 있다면 초가삼간 태워도 어떠한 죄책감도 없는 계엄 대통령을 보면서 15세기말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제시하는 군주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거짓말, 혼란 야기, 공포감 조성 등을 적절히 구사하면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은 다정하게 대해주든지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소한 피해에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는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 덜 망설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불리할 땐,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 군주는 능숙한 거짓말쟁이여야 한다. 결단력이 없는 군주는 당면한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대부분 중립적 길을 따르다 몰락한다.”

‘군주론’에 대해 두 가지 대표적인 견해가 있다. 첫째는 군주를 부정적으로 보는 접근으로 프랑스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이었던 이노상 장티예(1535~1588)는 ‘군주론’에 담긴 정치사상을 비판하며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정치술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역사 속 여러 독재자들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사자와 여우의 양면을 갖는 군주의 실체를 인식해가는 민중 교육적 시각이다. 루소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통하여 군주가 민중의 진정한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이익을 가장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파악한다. 루소는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을 훈계하듯이 하면서 사실은 인민을 가르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바로 이런 마키아벨리의 반어적 표현방법을 ‘풍자’라고 하면서, 이런 풍자가 나타난 ‘군주론’을 ‘공화주의자의 교과서’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정치가들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마키아벨리즘’을 배우겠지만, 대통령을 뽑는 백성들은 군주론에서 군주의 냉정한 본성을 철저히 습득해 쉽게 속는 일이 없어야겠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잘못 뽑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에게 참으로 슬프고 불행한 일이 또 발생하고야 말았으니 착잡하고 참담한 마음 금할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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