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 맛’…거시기가 거시기 혀서 거시기 해브렀구만 - 전라의 말들
2024년 12월 06일(금) 00:00 가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손정승 지음
손정승 지음
진도 출신 송가인이 한 예능 프로그램(JTBC ‘아는 형님’, 225회)에서 영화 대사를 전라도 사투리로 읽는 내용이 있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가운데 주인공 수진의 대사다.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라고 말하며 소주를 마신다. 송가인은 이 대사를 “이것을 마셔블믄 우리는 거시기여”라고 사투리로 말한다. 재치있는 말에 출연자들은 폭소를 터트린다.
전라도 말 가운데 ‘거시기’라는 어휘가 있다. 뭔가 생각나지 않을 때 전라도 사람들은 ‘거시기’라고 표현한다. 알고 있는데 순간 떠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거시기’로 대체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이름일 수도 있고 기분 상태일 수도 있고 전체 맥락을 설명할 때도 곧잘 쓰인다.
그러나 지나치게 ‘거시기’를 남발하면 자칫 말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미디어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그렇다. ‘거시기가 거시기 혀서 거시기 해브렀구만’ 같은 것이 그런 예다.
전라도 사투리의 대명사는 ‘거시기’라고 할 만큼 일상에서 자주 쓰인다. 그러나 전라도의 사투리는 무궁무진하다. 일상에서 유심히 살펴보면 구수하고 게미진 말들이 차고 넘쳐난다.
‘아무튼, 드럼’과 ‘고마워 책방’(공저)의 저자 손정승이 펴낸 ‘전라의 말들-이것을 읽어블믄 우리는 거시기여’는 전라도 말맛을 소개하는 책이다. 화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사는 여성으로 그는 “전라도에서 산 시간과 서울에서 산 시간이 거의 같아지는” 지점에 도달했다.
그가 이번 책을 쓰게 된 것은 “오랜 시간 책방에서 일하며 기어이 말을 다루는 사람으로 살게 되니 말의 힘과 아름다움을 더 선명히 느꼈”기 때문이다. 문장 100개와 그에 따른 단상 100개가 담긴 결과물은 전라도 사투리의 말맛을 오롯이 담고 있다.
서울에서 사용하는 말을 표준어라 하고 지역의 말은 사투리라고 한다. 수도 서울을 중앙으로 상정하고 지역을 지방으로 구분한 탓에 은연중 사투리에 대한 편견이 생겨났다. 그러나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고유의 토박이말이 있다. 저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든 말이며 제각각 다른 팔도 사투리는 우리 언어의 다양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과 같은 주5일이 정착되기 전에는 토요일 오전에는 등교를 했다. 온전한 ‘공일’이 아닌 ‘반공일’이었다. 전라도 사투리로 ‘반공일’은 ‘반갱일’이다. 저자는 제2회 전라도 사투리 경연대회 대상 수상작 ‘핸숙이의 일기’에서 ‘반갱일’에 대한 단상을 떠올린다. 이념과 관련된 단어가 아닌 절반만 비어 있다고 해서 전라도 사투리로 ‘반갱일’이 된 것이다.
저자는 목포 출신 가수 김경호를 좋아한다. 어려운 곡을 소화해내는 가창력, 예능에 출연해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모습이 좋다. 목포 출신인 김경호의 말은 눈을 감고 들으면 이웃집 아저씨가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다. (“허벌나게 이것도 다섯 개가 넘어요. 징허니 겁나게 허천나게 허벌나게 오라지게.”-예능 MBC ‘라디오 스타’, 360회)
‘흥보가 기가 막혀’는 1995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곡이다. 육각수는 판소리 ‘흥보가’에서 가사를 차용해 ‘판소리 랩’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다. 노래 가사 중에 “아이고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오 이 엄동설한에”라는 내용이 있다. ‘성님’은 ‘형님’의 ‘ㅎ’이 구개음화된 발음이다. 저자는 “입천장 중간에서 나던 소리가 앞쪽 천장에서 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흉년’이 ‘숭년’, ‘흉악하다’가 ‘숭악하다’로 발음되는 건 그런 연유다.
전라도 사람들 특히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귄 있다’라는 어휘가 있다. 호감이 간다는 뜻이다. 조정 시인의 ‘그라시재라, 서남 전라도 서사시’(이소노미아, 2022)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목구비가 빤듯해도 싱겁게 생긴 사람이/ 흔히 있는디 그 아짐은 귄이 딱 쪘등가안” 저자는 ‘기인 있다’라는 말이 줄어서 ‘귄있다’가 된 게 아닐까 추정한다. 당길 기(?), 사람 인(人)을 써서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못 싣는 사투리도 정말 어쩔 수 없이 생기더라고요. 이 부분은 독자님의 어깨를 살짝 밀며 “아따 쪼까 이해해 주씨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유유·1만4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그러나 지나치게 ‘거시기’를 남발하면 자칫 말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미디어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그렇다. ‘거시기가 거시기 혀서 거시기 해브렀구만’ 같은 것이 그런 예다.
그가 이번 책을 쓰게 된 것은 “오랜 시간 책방에서 일하며 기어이 말을 다루는 사람으로 살게 되니 말의 힘과 아름다움을 더 선명히 느꼈”기 때문이다. 문장 100개와 그에 따른 단상 100개가 담긴 결과물은 전라도 사투리의 말맛을 오롯이 담고 있다.
서울에서 사용하는 말을 표준어라 하고 지역의 말은 사투리라고 한다. 수도 서울을 중앙으로 상정하고 지역을 지방으로 구분한 탓에 은연중 사투리에 대한 편견이 생겨났다. 그러나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고유의 토박이말이 있다. 저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든 말이며 제각각 다른 팔도 사투리는 우리 언어의 다양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과 같은 주5일이 정착되기 전에는 토요일 오전에는 등교를 했다. 온전한 ‘공일’이 아닌 ‘반공일’이었다. 전라도 사투리로 ‘반공일’은 ‘반갱일’이다. 저자는 제2회 전라도 사투리 경연대회 대상 수상작 ‘핸숙이의 일기’에서 ‘반갱일’에 대한 단상을 떠올린다. 이념과 관련된 단어가 아닌 절반만 비어 있다고 해서 전라도 사투리로 ‘반갱일’이 된 것이다.
저자는 목포 출신 가수 김경호를 좋아한다. 어려운 곡을 소화해내는 가창력, 예능에 출연해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모습이 좋다. 목포 출신인 김경호의 말은 눈을 감고 들으면 이웃집 아저씨가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다. (“허벌나게 이것도 다섯 개가 넘어요. 징허니 겁나게 허천나게 허벌나게 오라지게.”-예능 MBC ‘라디오 스타’, 360회)
‘흥보가 기가 막혀’는 1995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곡이다. 육각수는 판소리 ‘흥보가’에서 가사를 차용해 ‘판소리 랩’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다. 노래 가사 중에 “아이고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오 이 엄동설한에”라는 내용이 있다. ‘성님’은 ‘형님’의 ‘ㅎ’이 구개음화된 발음이다. 저자는 “입천장 중간에서 나던 소리가 앞쪽 천장에서 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흉년’이 ‘숭년’, ‘흉악하다’가 ‘숭악하다’로 발음되는 건 그런 연유다.
전라도 사람들 특히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귄 있다’라는 어휘가 있다. 호감이 간다는 뜻이다. 조정 시인의 ‘그라시재라, 서남 전라도 서사시’(이소노미아, 2022)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목구비가 빤듯해도 싱겁게 생긴 사람이/ 흔히 있는디 그 아짐은 귄이 딱 쪘등가안” 저자는 ‘기인 있다’라는 말이 줄어서 ‘귄있다’가 된 게 아닐까 추정한다. 당길 기(?), 사람 인(人)을 써서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못 싣는 사투리도 정말 어쩔 수 없이 생기더라고요. 이 부분은 독자님의 어깨를 살짝 밀며 “아따 쪼까 이해해 주씨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유유·1만4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