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목사 - 박성천 문화부장
2024년 11월 24일(일) 21:30
‘늦봄’ 문익환 목사(1918~1994)는 신학자이자 시인이며 사회운동가였다. 평생 민주화와 남북통일을 위해 헌신한 시대의 선각자이기도 했다. 1918년 북간도로 일컫는 길림성 명동촌에서 태어난 문 목사의 일생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민족분단, 유신정권, 군사독재 등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어린 시절 명동촌의 개척과 자립정신은 문 목사에게 자연스레 항일 민족의식을 갖게 했다. 학창시절 그는 윤동주, 송몽규, 장준하 등과 교유관계를 맺으며 민족사랑의 결의를 다졌다. 문 목사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은 1975년 친구이자 독립운동가인 장준하의 죽음을 겪고서였다. 또한 명동소학교 시절 친구였던 윤동주의 죽음에 대해 늘 마음의 부채를 갖고 있었다.

문 목사는 76년 명동 ‘3·1민주구국선언’으로 옥고를 치렀고 80년 내란예비음모죄로 재수감됐다. 함석헌 등과 함께 진보주의 개신교 대표로 활동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매진했다. 89년 정부의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할 만큼 통일운동에도 열성적이었다.

올해는 문 목사 서거 30주년이 되는 해다.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를 주축으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의 삶과 정신을 다룬 뮤지컬이 광주에서 상연됐다. 광주문화재단이 23일 ‘늦봄의 길’을 빛고을시민문화관 2층에서 펼쳤다. 작품은 문 목사 생애 중 고난과 격동의 시기였던 1970~80년대에 초점을 맞춰 역동성과 몰입감을 선사했다.

서거 30주년이 지났지만 민주화와 통일에 매진했던 그의 삶은 여전히 울림을 준다. ‘늦봄’이라는 호는 계절의 의미보다 ‘늦게 눈을 뜨고 세상을 늦게 보았다’는 겸허한 의미를 담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민주와 공정, 상식의 가치들은 점차 퇴행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사태는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이와 맞물려 남북의 긴장도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요즘 들어 문익환 목사와 같은 어른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진다. 이래저래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 같고, 봄은 더디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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