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100세 생신 때도 꼭 함께 해요”
2024년 10월 27일(일) 20:30
‘스승의 팔순 잔치’ 연 화순 동면 동초등학교 9회 동창생들
50여 년 우정 이어온 졸업생들, 뜻 깊은 자리 마련
배봉업·김삼남 부부 “제자들이 큰 호강 시켜줘 감사”

50년 전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팔순 잔치를 마련한 화순 동면 동초등학교 9회 졸업생들.

지난 26일 저녁 광주시 서구의 한 식당에는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졸업 후 50년 동안 끈끈한 우정을 이어온 동창생들이 팔순을 맞이한 스승을 위해 따뜻한 시간을 마련했다. 50여 년간 이어지고 있는 사제의 인연, 1975년에 졸업한 화순 동면 동초등학교 9회 동창생들과 이들의 6학년 1반 담임 배봉업(80) 선생의 이야기다.

축하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과 떡케이크, 꽃다발을 준비한 제자들은 스승의 4번째 스무살을 축하하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스승 부부와 졸업생까지 17명이 모인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화순 동면 청궁, 마산, 동림 마을에서 나고 자라 배움의 길목에서 함께 한 이들은 ‘청마동의 꿈은 오늘도 빛나는 하루’ 문구가 새겨진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행사를 기획한 이인숙(여·62·서울 광진구) 동창회장은 “은사님과 안부 인사를 주고 받으며 살았는데, 이번에 친구들이 함께 뜻을 모아줘 이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모두가 행복하고 선물같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년에 한 번씩 동창회를 여는 제자들은 이번에는 스승의 팔순을 축하하기 위해 광주, 화순, 서울, 경기도 각 지역에서 모였다. 배봉업·김삼남 부부는 건강하게 모일 수 있어 반갑다며 고마운 마음과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강산이 다섯번도 바뀌는 반세기를 지나 평소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제 생일을 맞이해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받아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잘해준 것도 없는데 큰 호강을 받아도 되나 싶습니다.”

동국민학교에서 총 9년의 시간을 보낸 배 씨에게 학교와 제자들은 애착이 가고 기억에 남는 곳이다.

“50년 전을 돌이켜보면 산골에서 살며 순박하고 참 정겨운 시절이었습니다. 농사 짓느라 바쁠텐데도 어머니들이 찹쌀, 콩, 달걀을 가져다주셨고, 생각지도 못한 송별식도 해 주셨지요. 다른 학교에 가서도 잘하라는 뜻이구나 생각하고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배 씨는 부지런하고 정직한 ‘벌 같은 사람’이 되라며 직접 양봉한 꿀 한 병씩 제자들에게 나눠줬다.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돕고,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가르쳐주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부추겨줄 수 있도록 지도한 배 씨의 가르침을 제자들도 기억했다. 제자들은 ‘차별 없이 대해주시고 모든 학생을 아껴주신 스승’이라고 입을 모았다.

6학년 반장이었던 이의정 씨는 “부모님의 안부도 물어봐주시고 좋은 일 있으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준 것을 잊지 못한다”며 “공부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잘못하면 꾸짖으셨던 누구에게나 공평하셨던 선생님이었다”고 말했다.

총무 임설희 씨는 “모두 건강하니까 모일 수 있었다”며 “우리도 은사님과 같이 늙어가는데 90, 100세까지 건강해서 또 뜻깊은 자리에서 만나고 인생 후반기도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동창생들은 고창 선운사를 함께 거닐며 1박 2일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코흘리개 시절을 동거동락한 인연이 50년이 넘은 이날까지 이어져 온 훈훈하고 감동 가득한 날이었다.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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