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라는 무언극의 지평 넓힌 마임과 몸 언어들
2024년 10월 21일(월) 19:20
[리뷰]광주시립발레단 18~19일 희극발레 ‘코펠리아’ 23년만 전막 공연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 원작… 기계인형 연기 압권

광주시립발레단이 지난 18~19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희극발레 ‘코펠리아’ 전막 공연을 펼쳤다. 1막에서 코펠리우스 박사가 자동 인형 코펠리아를 공개하는 모습. <광주시립발레단 제공>

발코니에서 연무가 뿜어져 나온 뒤, 괴짜 과학자 코펠리우스의 자동인형 ‘코펠리아’가 얼굴을 내민다. 인형 역할의 무용수는 팔을 아래로 긋는 ‘앙 바’로 시작해 역방향인 ‘앙 오’까지 정교한 폴 드 브라(팔동작)를 시연한다.

한 몸짓이 페르마타(늘임표)위에 놓이면 그 다음 동작은 기민한 프레스토 위에서 펼쳐진다. 정해진 패턴처럼, 완주와 속주를 오가는 자동인형의 춤사위는 기계적이지만 사랑스럽다.

올해 초 프리뷰 격인 ‘Voice of spring’에서 봤던 것보다 자신감 있는 모습은 치열한 연습 시간을 가늠하게 한다. 지난 18~19일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무대화된 희극 발레 ‘코펠리아’다.

광주시립발레단(예술감독 박경숙)이 지난 19일 ‘코펠리아’를 23년 만에 전막 공연으로 선보였다. 아기자기한 프랑스 발레의 묘미와 19세기 자동인형에 대한 로망을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연 전부터 대중적인 기대를 모았다.

헝가리 민속무 ‘차르다쉬’.
기대와 함께 작품에는 내러티브 전달에 대한 염려도 뒤따랐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의 소설 ‘모래 사나이’를 극화한 까닭에, 예술감독들은 무언극(無言劇)인 발레의 서사 전달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이번 전막 공연은 그러한 염려를 종식시켰다. 총 3막에 걸쳐 막간마다 간단한 스토리를 담은 로그라인을 스크린에 송출했으며, 섬세한 마임 연기를 발레 형식 안으로 끌어와 부족한 서사성을 보충했다.

가령 ‘춤추다’는 머리 위에서 손목을 교차해 돌린 후 풀어주는 것으로, ‘분노심’은 주먹을 쥐고 머리 위로 올리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두 손바닥을 심장에 가져다 대면 ‘사랑한다’는 의미이며 손가락을 하늘로 찌르는 것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뜻이었다.

이 같은 마임 동작들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됐다. 동작에 곁들여지는 주역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 또한 ‘표정도 발레를 위한 근육’이라는 사실을 환기했다.

로맨틱 발레의 대표격 작품인 만큼 그 특징들도 선명히 드러났다. 발끝을 완전히 세워 춤추는 포인트 기법과 남녀 주인공의 낭만적인 2인무 파드되가 여러 번 등장했다.

특히 스와닐다가 프란츠(박범수)와 함께 추는 ‘보리이삭 파드되’는 상징적인 갈라였다. 두 사람이 보리이삭 하나를 들고 사랑의 몸짓을 선보이자 공연장에는 혼인을 앞둔 연인의 행복감이 감돌았다.

마을 축연 분위기를 연출한 초입에서는 폴란드 민속무용인 ‘마주르카’나 헝가리 민속무 ‘차르다쉬’도 펼쳐졌다. 이 장면들은 내용 전개상 필수적이지 않으나 오락성, 여흥을 고조시키는 디베르티스망으로 읽힌다.

일찍이 20세기 안나 파블로바 등 황실 발레단은 이 대목을 줄이고 2막으로 압축한 버전을 선보였다. 많은 발레단들이 단막이나 개작 버전을 상연해 왔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디베르티스망을 포함한 ‘전막’ 특유의 온전한 매력을 선사했다.

마을 사람들과 무용수들이 어우러진 ‘축제’ 분위기의 종막.
스와닐다(강민지 분)가 코펠리우스의 방에 잠입한 뒤 ‘인형의 춤’을 추는 2막은 일종의 클라이맥스였다. 비밀 공간에서 무용수가 튀어나와 병정 연기를 하거나, 굳어 있던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장면도 돋보였다.

스와닐다는 중화풍 인형이 들고 있던 부채, 병정의 칼 등 소품을 활용해 짧은 ‘부채무’, ‘검무’를 췄다. 정중동의 미학, 극중극의 재미를 비롯해 스와닐다 친구들(임예섭 외 5인)이 펼친 위트 있는 몸짓도 볼거리다.

말미에 코펠리우스는 스와닐다에게 인형이 망가진 피해 보상금을 요구했으나, 영주가 대신 황금 주머니를 건넨다. 코펠리우스는 이에 만족하고 전 출연진과 어우러져 춤을 춘다.

‘행복한 결말’이 희극 발레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종막의 흐름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됐으나, 황금만능주의를 매개로 해피 앤딩에 도달한 점은 의미 층위에서 희비극적 요소로 볼 수 있다.

강민지 수석 발레리나는 “매일 하는 발레지만 공연할 때마다 설레고 떨린다”며 “발레단의 안무를 보면서 행복해하는 관객들이 있어 이번에도 무대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편 이날 공연 지휘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지휘과 등을 졸업한 박승유가 맡았으며 협연 오케스트라로 카메라타 전남이 출연했다. 광주시립발레단은 또 다른 호프만 원작 ‘호두까기 인형-크리스마스 시즌 공연’을 준비 중이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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