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창간 40주년] 예향이 만난 사람들
2024년 10월 07일(월) 19:00 가가
시대가 사랑한 거장들, 그들의 신념이 전해준 묵직한 울림
김대중 전 대통령·황영성 화백
임권택 감독·윤공희 대주교 등
예술가 ·명사들의 생생한 목소리
한국문화예술 아카이브 역할 톡톡
김대중 전 대통령·황영성 화백
임권택 감독·윤공희 대주교 등
예술가 ·명사들의 생생한 목소리
한국문화예술 아카이브 역할 톡톡


민주주의와 통일과 아시아 민주화와 세계평화에 헌신하겠다. 나는 내가 헌신하는 이 길이 진리의 길이요, 역사의 창조이기 때문에 그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나 자신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영화 거장이 독자에게 전하는 ‘떨림과 울림’=“좋은 작품이란 그 나라의 토양에서 그 나라의 정서나 미적세계가 확실하다든지 메시지가 확실해야 합니다. 우리도 한국인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영화, 우리의 토양과 정서, 생활을 담고 강조한 우리 색깔의 영화를 만들어야 외국에 나가서 경쟁력이 생깁니다.”
장성출신 임권택 감독은 ‘예향’ 1989년 10월호를 통해 화두(話頭)로 품고 있던 ‘우리 색깔의 영화’에 대해 밝혔다. 이후 ‘씨받이’(1986년)와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년), 개벽(1991년), 서편제(1993년), 태백산맥(1994년) 등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취화선’(2002년)으로 5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인생의 전부를 영화에 걸었던 노장은 ‘예향’ 인터뷰(2016년 6월호)를 통해 “이렇게 (영화를) 오래하다 보니까 인생이 녹아서 영화가 되고 또 영화가 녹아서 인생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예향’은 40년 동안 매달 수많은 사회명사와 아티스트들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인터뷰이들은 우직하게 한길을 걸어온 자신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꾸밈없이 들려주었다. 활자로 기록된 그들의 생생한 육성(肉聲)은 소중한 한국문화예술 아카이브(Archive·기록보관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
◇윤공희 대주교 등 사회명사 메시지 전달=1984년 10월 ‘문화예술 종합 교양지’를 표방하며 출범한 ‘예향’은 ‘만나고 싶었습니다’와 특별 대담 등을 통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윤공희 대주교(1985년 1월호)와 이한기 전 감사원장(1985년 2월호), 윤관 대법관(1990년 2월호), 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1994년 1월호) 등 사회명사 인터뷰에는 오늘날에도 공감하고 귀담아들을 만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올해 백수(白壽·100살)를 맞은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는 1985년 1월호 인터뷰에서 ‘갈수록 메말라 가는 시대에 종교인의 참다운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정신적 가치’와 ‘정의’를 강조한다.
“우리의 현실은 물질적 풍요 추구에 그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조건은 경제도 필요하지만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정의를 말하는 것은 그것이 곧 하느님의 뜻이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송기숙 작가·김지하 시인 등 창작의 산실(産室) 찾아=수많은 소설가와 시인, 문학평론가들이 ‘이달에 만난 사람’과 ‘창작의 방’, ‘예향 초대석’ 코너를 통해 소개됐다. 올해로 등단 58년을 맞은 한승원 작가(2021년 7월호)는 “나는 살아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1980년 5월 광주 소식을 전해 들었던 작가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가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등을 읽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밝힌다. 김지하(1941~2022) 시인은 창간호와 1999년 10월호에서 강원도 원주 생활과 율려(律呂)운동, 출판계획에 대해 밝힌다. 시인은 ‘너무 앞질러 가고 시에서 욕을 너무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지적에 “그게 어디 욕입니까? 하나의 문법 아닙니까?”라고 반박한다. 1989~1990년 ‘예향’에 ‘갯나루’ 시리즈를 연재했던 곽재구 시인(2021년 4월호)은 하루 24시간, 8만6400초를 오롯이 시에 바친다. 시인은 “내 삶의 발은 두 개인데 한발은 시고 한발은 여행”이라며 “한발로 걸어가고, 한발로 시쓰고 이것이 내 삶이죠”라고 말한다.
평생동안 한길을 걸어온 예술가들과 노장 철학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독자들에게 ‘울림’을 준다.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2016년 2월호)는 최근 에세이 ‘100세 철학자의 사랑수업’(열림원 刊)을 펴내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신적으로는 상류층,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으로 살자’며 정신적인 행복감과 인문학적 사유를 강조한다.
“인문학적 사유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선입관념에 빠지고, 고정관념에 빠지고, 절대주의에 빠져 역사를 비극으로 만들어요.”
◇클래식과 국악·회화…영원한 예술인생=“우리도 평범한 부부예요. 둘 다 예술을 한다고 해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남들처럼 부부싸움도 하고 그러다가 또 화해하고 그럽니다. 다만 서로의 영역을 진심으로 존경해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좀 다르다고 할까요.”
백건우·윤정희(1944~2023) 부부는 ‘특별 인터뷰’(1994년 1월호)에서 부부 금실을 보여준다. 1960년대 남정임·문희와 더불어 ‘트로이카’로 불렸던 윤정희는 부산 태생이지만 부친을 따라 광주에 온 후 전남여중·고를 나와 광주와도 인연이 깊다. ‘신이 내린 춤꾼’ 이매방(1927~2015) 선생(2014년 11월호)은 몸짓이 아니라 몸에서 마음이 우러나오는 심무(心舞)를 최고로 친다.
“마음이 고와야 춤도 고운 법이여. 한국 춤의 아름다움은 정중동(靜中動)에 있어. 우리 몸에서 배꼽이 중(中)이지. 배꼽 밑은 정(靜)이고 위는 동(動)이야. 한국 전통춤의 멋은 기와 지붕이나 한복의 선처럼 곡선의 아름다움이지.”
한국 현대미술 단색화 거장 박서보(1931 ~2023) 화백을 인터뷰(2022년 7월호)한 때는 타계하기 1년 4개월여 전이었다. 기지재단 전시 공간에서 새가 날아와 쪼아 먹은 단풍색 작품 등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예술가는 남과 달라야 한다. 선생도, 친구도 닮으면 안 되고 역사에도 빚지면 안된다.”
단색화 거장은 평생 염두에 둔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해도 추락한다”는 문구를 묘비에 새겼다.
황영성 화백(2023년 12월호)은 지난해 겨울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초대전 ‘우주가족 이야기’를 개최했다. 평생 동안 ‘가족’이라는 주제에 천착(穿鑿)해온 60년 화업(畵業)을 되돌아보는 전시였다.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당시 남으로 내려와 광주에 정착한 원로 화가는 ‘가족이야기’에 몰두해온 까닭을 이렇게 밝힌다.
“나는 가족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작업의 주제도 가족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그림을 근 30여 년 그려온 것같다. 처음에 가족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전쟁과 가난이 빼앗아간 나의 가족, 아버지,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그런 그리움이었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올해 백수(白壽·100살)를 맞은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는 1985년 1월호 인터뷰에서 ‘갈수록 메말라 가는 시대에 종교인의 참다운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정신적 가치’와 ‘정의’를 강조한다.
“우리의 현실은 물질적 풍요 추구에 그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조건은 경제도 필요하지만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정의를 말하는 것은 그것이 곧 하느님의 뜻이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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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문학이 무력할 수가 없어 못 쓰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만났어요. ‘한심한 영혼아, 너는 고기와 포도주와 빵을 사먹는 것이 아니고, 흰 종이에 빵, 고기, 포도주라고 쓰고 그 종이를 먹는구나’하는 그의 말이 ‘소설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나를 거듭나게 해주었죠.” 한승원 작가 |
평생동안 한길을 걸어온 예술가들과 노장 철학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독자들에게 ‘울림’을 준다.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2016년 2월호)는 최근 에세이 ‘100세 철학자의 사랑수업’(열림원 刊)을 펴내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신적으로는 상류층,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으로 살자’며 정신적인 행복감과 인문학적 사유를 강조한다.
“인문학적 사유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선입관념에 빠지고, 고정관념에 빠지고, 절대주의에 빠져 역사를 비극으로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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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평범한 부부예요. 둘 다 예술을 한다고 해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남들처럼 부부싸움도 하고 그러다가 또 화해하고 그럽니다. 다만 서로의 영역을 진심으로 존경해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좀 다르다고 할까요.” 피아니스트 백건우·영화배우 윤정희 부부 |
백건우·윤정희(1944~2023) 부부는 ‘특별 인터뷰’(1994년 1월호)에서 부부 금실을 보여준다. 1960년대 남정임·문희와 더불어 ‘트로이카’로 불렸던 윤정희는 부산 태생이지만 부친을 따라 광주에 온 후 전남여중·고를 나와 광주와도 인연이 깊다. ‘신이 내린 춤꾼’ 이매방(1927~2015) 선생(2014년 11월호)은 몸짓이 아니라 몸에서 마음이 우러나오는 심무(心舞)를 최고로 친다.
“마음이 고와야 춤도 고운 법이여. 한국 춤의 아름다움은 정중동(靜中動)에 있어. 우리 몸에서 배꼽이 중(中)이지. 배꼽 밑은 정(靜)이고 위는 동(動)이야. 한국 전통춤의 멋은 기와 지붕이나 한복의 선처럼 곡선의 아름다움이지.”
한국 현대미술 단색화 거장 박서보(1931 ~2023) 화백을 인터뷰(2022년 7월호)한 때는 타계하기 1년 4개월여 전이었다. 기지재단 전시 공간에서 새가 날아와 쪼아 먹은 단풍색 작품 등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예술가는 남과 달라야 한다. 선생도, 친구도 닮으면 안 되고 역사에도 빚지면 안된다.”
단색화 거장은 평생 염두에 둔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해도 추락한다”는 문구를 묘비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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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족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작업의 주제도 가족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그림을 근 30여 년 그려온 것 같다. 처음에 가족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리움이었던것 같다. 전쟁과 가난이 빼앗아간 나의 가족, 아버지,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그런 그리움이었다” 황영성 화백 |
“나는 가족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작업의 주제도 가족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그림을 근 30여 년 그려온 것같다. 처음에 가족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전쟁과 가난이 빼앗아간 나의 가족, 아버지,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그런 그리움이었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