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노경수 광주대 도시·부동산학과 교수
2024년 09월 23일(월) 00:00
작은 아이가 사람들과 마음이 편치 않아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I May Be Wrong)’라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주문을 마음속에 되뇌었더니 신기하게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한결 나아진 느낌을 책 뒷면에 적어 선물로 주었다.

우리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갈등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대방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 답답함과 속상함에 목소리가 높아져 상황을 힘들게 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이때 숲속의 현자 비욘은 스승이 가르쳐준 ‘마법의 주문’을 알려준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덧 분노와 미움이 약간 헐거워지고 그 사이로 한줄기 조용한 숨소리가 밀려들며 평온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 주문은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한 진실이지만, 너무나 쉽게 잊어버려서 가장 필요할 때 퍼뜩 떠올리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고백하는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스물여섯 살에 임원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돌연 사직서를 내고 태국 숲속 사원의 승려가 된다. 이후 17년간 수행하던 그는 46세에 승복을 벗고 일상 속에서 마음의 고요를 지키는 법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한다.

2018년 그는 근육이 위축되고 운동신경이 소멸되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담담하게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집필하고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2022년 1월 안락사를 택하여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17년간의 수행으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이것을 ‘초능력’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취와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어필할 수 있는 세상에서 나의 확신으로부터 한발짝 물러나서, 그 생각을 멈추고 둘러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인생에서 언제고 폭풍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자기 생각을 모두 믿어버린다면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빠져듭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면 두려움과 아픔이 마침내 당신을 찾아왔을 때 가느다란, 그러나 굳건한 구명줄이 되어 줄 것입니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보면 내가 인생에서 백퍼센트 옳다고 생각했을 때 나쁜 선택지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는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세상 일이 싫어질 때, 누군가 미울 때,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나는 한번씩 되뇌어 본다. “내가 틀릴 수도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고. 이제는 너무나 확신에 찬 사람들을 보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쳐다보게 된다.

요즘 의료대란, 특검, 거부권 행사 등 정부와 야당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어 국민의 인내는 한계점에 이른 것 같다. “정권의 전지전능·무오류를 전제로 한 질주와 전복, 내부비판·교정 기능의 점멸과 남 탓, 이게 바로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 무엇보다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 여기서부터 야당도, 여당도, 국민과의 살가운 대화와 소통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은 지금부터 20년 전 당시 정부의 실정을 비난하는 한 언론 컬럼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 수준은 변함이 없다. 비욘의 주문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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