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지적 대화 - 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 전 네팔 카트만두대 객원교수
2024년 09월 04일(수) 00:00 가가
정년퇴임한 대학에서 ‘삶과 지적 대화’라는 교양과목의 한 꼭지를 맡게 되었다. 다양한 학과에서 온 수강생의 절대다수는 1학년,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가 줄어드는 것이 나이가 어릴수록 ‘삶’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업평가서에 학생들은 여러 전공분야 교수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시킨 강의와 소그룹 멘토링을 장점으로 꼽았다.
십여 년 만에 강단에 섰으나 여전히 십대 후반, 이십대의 학생들을 대하니 시간을 되돌린 듯 감회가 새로웠다. 과거의 전공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지만 팔십 가까이 살아온 연륜이 있기에 ‘삶’에 대해서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우선, 학생들과 소통하고 동시에 80여 명의 출석을 체크하기 위하여 생각해낸 묘안이 쪽지대화였다. 또 삶과 지적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모델로 달걀을 사용하였다.
첫 학기에는 맥반석 구운 달걀을 주면서 달걀을 ‘삶’이라 생각하고 관찰을 통하여 삶의 일부라도 이해하자고 제안하였다. 생달걀을 주면 관리하기 불편하고 삶은 달걀보다는 구운 달걀이 더 맛있으니까 나름 인심을 쓴 것이었다. 하지만 껍질만 까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구운 달걀 같은 삶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소수일 뿐이며 또 모두에게 똑같은 삶의 여건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일괄 구운 달걀이 적절한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학기에는 삶은 달걀과 날달걀을 각각 비닐 지퍼백에 넣고 하나씩 가져가게 하였다. 다음은 몇몇 학생들의 달걀 관찰과 연결시킨 삶에 대한 쪽지대화이다.
내가 집은 것은 날달걀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흔들었을 때 내용물이 움직이는 느낌, 껍질 속에서 부딪치면서 헐떡거림 같은 것을 느꼈다. 더 많이 흔들었더니 고요해지는 것이 마치 달걀이 역경을 극복하고 적응하는 것 같다. 삶에서도 이런 상황을 맞을 수 있고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적응하면 잘 될 것 같은 자신감을 느낀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던 중 수업시간에 달걀을 받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강의실을 나서는데 곧바로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너의 삶이다. 너의 삶을 남에게 줘버리거나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후 만난 나의 소중한 친구는 그 달걀이 무엇이냐 묻더니 자신이 맡았다가 집에 가기 전에 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그에게 내 삶을 잠시 맡겼다. 늦은 저녁, 작별인사를 하며 그는 내게 달걀을 돌려주는데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고작 달걀이지만 그에게 맡긴 나의 삶을 온전히 돌려받는 기분이었다. 버리려했던 내 삶을 소중히 감싸준 친구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삶이 고통이라며 비관했지만 이렇듯 내가 맞이할 평안이 있기에 나는 삶을 버리지 않겠다.
그냥 달걀을 하나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달걀이니 깨질까봐 가방에 넣고 다닐 수도 없어 하루 종일 달걀을 들고 다니는 것은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삶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 자취방에 가서 저녁 식사에 달걀프라이를 해서 반찬 한 가지가 늘었다. 삶의 일부를 남에게 내줄 수 있다는 것,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삶이 주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전공수업이 있어서 달걀을 소중히 쥔 채 강의실로 향했다. 달걀을 본 친구들은 삶은 달걀인지 날달걀인지 궁금해 하는 등, 다양한 반응들이 재미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한 친구가 삶은 달걀이라 확신(?)하고 깨뜨렸는데 날달걀이었다. 한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절망 속에서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이렇듯 잘못된 판단에 버려지는 달걀처럼 내 삶도 잘못된 생각 하나에 깨질 수 있다. 한 번뿐인 내 삶을 신중하고 소중하게 살아야겠다.
달걀과 삶을 연결시키는 학생들의 지적 능력, 진지함에 감동하며 새롭게 나의 과거와 현재의 삶,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가르치면서 배운다. 한창 젊은 나이에 삶과 지적 대화를 하는 내 학생들이 참 부럽다.
내가 집은 것은 날달걀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흔들었을 때 내용물이 움직이는 느낌, 껍질 속에서 부딪치면서 헐떡거림 같은 것을 느꼈다. 더 많이 흔들었더니 고요해지는 것이 마치 달걀이 역경을 극복하고 적응하는 것 같다. 삶에서도 이런 상황을 맞을 수 있고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적응하면 잘 될 것 같은 자신감을 느낀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던 중 수업시간에 달걀을 받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강의실을 나서는데 곧바로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너의 삶이다. 너의 삶을 남에게 줘버리거나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후 만난 나의 소중한 친구는 그 달걀이 무엇이냐 묻더니 자신이 맡았다가 집에 가기 전에 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그에게 내 삶을 잠시 맡겼다. 늦은 저녁, 작별인사를 하며 그는 내게 달걀을 돌려주는데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고작 달걀이지만 그에게 맡긴 나의 삶을 온전히 돌려받는 기분이었다. 버리려했던 내 삶을 소중히 감싸준 친구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삶이 고통이라며 비관했지만 이렇듯 내가 맞이할 평안이 있기에 나는 삶을 버리지 않겠다.
그냥 달걀을 하나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달걀이니 깨질까봐 가방에 넣고 다닐 수도 없어 하루 종일 달걀을 들고 다니는 것은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삶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 자취방에 가서 저녁 식사에 달걀프라이를 해서 반찬 한 가지가 늘었다. 삶의 일부를 남에게 내줄 수 있다는 것,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삶이 주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전공수업이 있어서 달걀을 소중히 쥔 채 강의실로 향했다. 달걀을 본 친구들은 삶은 달걀인지 날달걀인지 궁금해 하는 등, 다양한 반응들이 재미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한 친구가 삶은 달걀이라 확신(?)하고 깨뜨렸는데 날달걀이었다. 한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절망 속에서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이렇듯 잘못된 판단에 버려지는 달걀처럼 내 삶도 잘못된 생각 하나에 깨질 수 있다. 한 번뿐인 내 삶을 신중하고 소중하게 살아야겠다.
달걀과 삶을 연결시키는 학생들의 지적 능력, 진지함에 감동하며 새롭게 나의 과거와 현재의 삶,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가르치면서 배운다. 한창 젊은 나이에 삶과 지적 대화를 하는 내 학생들이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