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주인공 꿈꾸는 신중년] ‘경력’에 ‘관심’ 더해 다시 꾸는 꿈 ‘도슨트’
2024년 08월 25일(일) 21:00
<10> 뷰폴리 해설사 김경희 씨
방통대에서 교육학 전공 후 미용 접목
10여년간 뷰티미용학 겸임 교수 재직
은퇴 앞두고 ‘하고 싶은 일’ 고심
알고 있는 지식 전하는 ‘해설사’에 관심
5·18 사적지 등 독학해 실무 적용
“설자리 스스로 개척…즐길수 있는 일 행복”

김경희씨가 설치미술 ‘자율건축’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에 안주하기보다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고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니, 제 적성에 맞는 인생 2막이 열렸네요.”

은퇴를 앞두고 50~60년 동안 가슴 깊은 곳에 품고만 있던 꿈에 주저 없이 도전하는 시니어들이 있다. 광주시 동구에서 ‘뷰폴리 해설사’로 활동 중인 김경희(58) 도슨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해남에서 나고 자란 그는 전남도립대 및 방송통신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1990년 초반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쉽사리 취업이 되지 않았다.

당시 그는 미용에 관심이 있던 터라 미용실 어시스턴트부터 시작해 미용기술을 배우면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배웠던 전공을 버리기 아까웠던 까닭에 교육학을 미용학에 접목, 지난 2005년 전남도립대 토탈뷰티미용학과 겸임교수직에 도전했다.

그는 결국 임용에 성공해 10여 년 동안 헤어뷰티 과목을 강의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그였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점차 나이가 많아지는 반면 겸임교수직에 젊은 고학력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미용학과 교수를 할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인생 2막을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처음 도전했던 것은 사회복지사와 보험영업이었다. 주변에서 도전하는 이들도 많고 추천도 이어졌다는 점에서다.

이후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날마다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직종이라는 점에서 그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기했다.

다시 고민에 빠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알려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경희 해설사(오른쪽)가 5·18 사적지인 ‘MBC 옛터’에서 부산 중·고교 역사동아리 학생들에게 해설하고 있다. <김경희 씨 제공>
당초 그는 2015년께 ACC 개관과 함께 동구로 이사 올 정도로 동구 골목 골목의 풍경과 이미지를 좋아했다. 이런 그가 우연히 ‘도심 트레일 해설사’, ‘5·18 사적지 해설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도슨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 작품에 관해 설명을 해주는 해설사를 말한다. 미술이나 역사 등에 관심 있고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도전해 볼 수 있는 분야다.

특히 지역의 변천사 등을 해설하는 역할이라면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들이 도전하기 좋은 직종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현재 인생 2막의 직업을 찾게 됐다.

그는 곧바로 2016년부터 1년여 동안 ‘5·18 사적지 해설’에 대해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이듬해 다양한 기관에 사적지 해설사로 채용된 그는 망월동 국립묘지, 전일빌딩245, 5·18 기록관 등 방문객들에게 광주의 역사적 공간을 소개했다.

또 동구 도심 트레일 사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광주시 동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통의 원두막’, ‘광주 사랑방’ 등 폴리 작품을 접했고 매력에 푹 빠졌다.

그러던 중 광주 시내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광주시 동구 ‘뷰 폴리’에서 그는 자신의 길을 찾았다.

뷰폴리는 광주영상복합문화관 8층 옥상에 설치된 예술 작품이다. 광주비엔날레 일환인 ‘광주폴리 프로젝트’를 통해 설치된 이 작품은 지역의 랜드마크로도 알려졌다.

옥상에 위치한 이 폴리는 관객들이 직접 색을 바꿀 수 있는 참여형 조형물이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충장로 및 조선대, 무등산 등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히든 스팟이기도 하다.

주 5일 일일 4시간씩 총 20시간으로 국내·외 관광객들(하루 평균 2팀)에게 ‘뷰폴리’를 해설하는 게 그의 업무다. 또 뷰폴리 총괄로 유지·보수까지 맡고 있다.

그는 “2021년 9월부터는 광주비엔날레 폴리부와 인연이 닿아 근무를 시작했다”며 “당시 광주영상복합문화관 6층에서 뷰 폴리를 해설할 도슨트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이 자리에 이르렀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보다 수입은 다소 감소했으나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어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서 “‘급여’만이 유일한 가치는 아닌 것 같다”고 조언했다.

김경희씨가 어린이 단체 방문객에게 광주영상복합문화관 8층에 위치한 뷰폴리 설치물 ‘자율건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어려움도 뒤따랐다.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예산 부족으로 ‘뷰폴리 도슨트’ 자체가 폐지될 뻔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급여는 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6개월 정도라도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다행히 비엔날레는 광주시 동구의 ‘골목길 큐레이터 사업’과 연계해 올해 5월부터 임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지난해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진행했던 퀘벡 네셔널데이 행사, 타지역 문화재단이나 시민들이 방문했을 때 해설했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여행객들이 단체로 와서 뷰폴리를 감상하고 ‘동구는 너무 좋은 곳이다’라고 말해줬던 기억 등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의 응원도 인생 2막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미소를 띠었다. 처음 해설사·도슨트에 ‘입문’한 것도 해설사 공고 소식을 큰 딸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는 퇴근 후에는 “오늘 폴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족들과 공유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며 “딸들은 엄마가 즐거워 보인다는 이유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자녀들의 응원이 중요하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그는 ‘해설가 부부’로도 알려졌다. 그의 남편 또한 광주 무돌길 해설사로 근무하면서 무등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중이다.

그는 신중년 세대에 대해 “나와 같은 신중년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끼어 있는 ‘샌드위치 세대’로 지금껏 진정으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면서 “인생 1막을 지나 어느덧 2막에 도달했지만, 사실 100세 시대에 인생 ‘3막’도 있다는 생각으로 신중년이 설 자리를 스스로 개척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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