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려다 마약 중독?…마약 성분 다이어트약 무분별 처방
2024년 08월 25일(일) 19:20
중복·장기 처방 성행…필로폰과 유사, 불면증·환각 등 부작용
중고거래 가능해 청소년 위험 노출도…성분 등 설명 의무화를

/클립아트코리아

광주지역 일부 병원이 일명 ‘다이어트의 성지’로 불리며 마약성분이 포함된 다이어트약을 무분별하게 처방해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거래 사이트 등지에서도 마약류 성분이 포함된 다이어트 약이 중고로 유통돼 성인은 물론 청소년들의 중독과 부작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최근 찾은 광주시 서구의 한 내과에는 다이어트약을 처방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진료를 받으려면 1시간 이상 대기해야 했지만, 약을 처방받는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정부가 인바디 검사 등을 통해 체질량지수(BMI)를 측정하고 처방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권고 사항일 뿐이었다.

A씨(32)는 “2년 전부터 결혼을 앞두고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을 처방받았다”면서 “약간 과체중 수준이었는데 한달치 약을 먹고 10㎏ 감량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약을 끊으니 15㎏이 다시 찌는 ‘요요현상’이 나타났다”면서 “2년여간 약을 먹고 살을 빼고 약을 끊으면 다시 찌고를 반복하게 됐다”고 호소했다.

A씨는 이날 또다시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인 펜터민 성분이 포함된 식욕억제제 2~3개월 분을 한꺼번에 처방받았다.

펜터민은 중추신경에 작용을 해 배고픔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높이는 기능을 하는 성분으로 효과는 크지만 필로폰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용하면 의존성이나 내성이 발생할 수 있고, 우울증과 불면증, 환청·환각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펜디메트라진, 마진돌 등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안전기준을 마련해 만 17세 이상, 체질량지수(BMI) 30kg/㎡ 이상인 사람 등에게 4주 이내에, 최대 3개월 동안만 단기처방·투약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광주지역 일부 병원은 무분별하게 마약류 다이어트 약을 처방해주고 있다.

같은 날 다른 병원에서 만난 안모씨(여·27)씨는 “다이어트 약에 마약 성분이 있는줄 몰랐다. 의사가 부작용을 언급했지만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의사는 향정신성의약품의 과다·중복 처방 등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환자의 투약 내역을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씨는 “이전 투약 내역을 확인하지 않고 단지 처방만 받았다”고 했다.

허술한 의료 시스템 때문에 환자가 식욕억제제를 3개월 이상 장기처방 받거나 병원을 옮겨다니며 많은 약을 처방받는 것이 가능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약류가 포함된 다이어트 약들이 온라인을 통해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 처방받은 약을 되팔고 있는 것이다.

실제 광주지역 커뮤니티에 “디에타민에 내성이 생겨 다른 병원에서 푸린정(펜디메트라진 성분의 식욕억제제)을 처방 받았다”는 등의 게시글이 올라왔고, 댓글에는 “구매를 원한다”는 글이 달리기도 했다.

마약류 성분이 든 약물은 중독과도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5일 광주경찰에 따르면 광주지역에서 마약사범은 2021년 95건, 2022년 106건, 2023년 508건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광주경찰이 지난해 검거한 마약사범 총 740명 가운데 향정신성의약품 관련이 508명으로 68%를 차지했다.

문제는 정부의 안전기준이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마약류가 포함된 다이어트 약을 과다처방해도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다. 의료행위를 벗어난 사실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

경찰은 “향정신성의약품 중 식욕억제제와 같이 병원에서 처방하는 경우는 적발이 매우 어렵다”면서 “식약처에서 요청이 오면 수사 협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한 사람이 여러 병원을 돌며 처방받아 판매하는 행위를 적발하는 것은 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정규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민에게 마약류 성분이 포함된 약물도 ‘의사가 처방해줬으니 괜찮겠지’하는 안이한 인식을 갖게할 수 있다”며 ”의사의 처방자율권을 존중하는 선에서 처방시 성분과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