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품격 -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4년 07월 01일(월) 00:00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장소를 이동하며 인사를 주고 받을 기회를 갖는다. 일터나 학교처럼 익숙한 공간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 받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공공장소처럼 열린 공간을 비롯해 공동주택의 승강기나 택시 안 등과 같은 작은 공간에서까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인사를 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사하라고 하면 싫어한다는 건 다 아는 얘기다. 그렇다고 직장 내에서 인사 잘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인사 얘기를 꺼내자 마자 꼰대란 소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때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던 우리 나라가 어쩌다 인사란 시대에 뒤처지는 피곤하고 불편한 관습으로 통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코로나 펜데믹의 여파로 인한 비대면 문화가 한몫을 하면서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인사예절이 전과는 달라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웃 나라 일본은 여전히 인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디지털화된 결재난에서 조차 직위의 차등에 따라 다른 각도로 목례하듯 도장을 눕혀 날인하는 걸 보면 역시 못말리는 일본이다 싶다. 인사를 비롯한 예절이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어디서나 아이들을 교육하며 누구에게나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솔선수범하는 면은 과히 놀랍다.

근래 도쿄 외곽의 한 작은 상점에서 유리 그릇을 몇 개 사고 계산을 했다. 보통 계산을 하고 나면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물건값을 치른 포장백을 받는다. 하지만 그 작은 가게는 달랐다. 계산을 마쳤는데도 젊은 판매자는 포장한 상품이 담긴 종이백을 도통 넘겨 주질 않았다. 정중하게 두 손으로 출입문 쪽으로 길을 안내한 뒤 상점 밖에 나가서야 가방을 건네 주었다. 그리곤 45도 각도로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절을 했다.

누군가는 이 인사가 다소 지나치다며 그저 장사하는 솜씨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사를 받으면 우리는 절로 그 인사의 진심과 품격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몸이 저절로 반응하며 거울에 비춰 반사하듯 답례하게 된다. 이 경험은 불과 잠깐이었지만 큰 여운으로 남았다. 나중에 일본인 친구를 통해 안 사실은 그 인사가 ‘사이케이레이’라는 일본의 여러 인사법 중 하나로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하거나 사죄할 때 하는 인사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으레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본을 다녀온 탓인지 요 근래 일상에서 경험하는 우리 사회의 큰 변화 중 하나가 인사성이다. 식당이며 상점 등 어디 서고 줄어든 인사 탓에 불친절함을 경험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색하고 무색함을 느끼는 순간을 자주 맞닥트린다. 심지어 인사를 먼저 건네는 것조차 실례가 아닌지 망설이다 웬만하면 눈 마주침은 피하고 슬쩍 인사를 생략하기가 일쑤다.

인류는 역사가 기록되기 오래 전부터 인사를 해왔다. 어느 문화권이고 적대감을 표현하기 위해 인사를 건네는 곳은 없다. 애당초 생존과 안전을 담보 받기 위해 시작되었을 인사는 오랜 역사를 통해 시대에 따라 변화를 꾀하며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담은 문화적 행동양식으로 발전해 왔다. 또한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쉽게 저버릴 수 없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관점과 관계를 드러내는 태도다.

근대 자유주의의 선구자이며 16세기 문화사상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라스무스는 그의 말년에 ‘소년들의 예절론’을 집필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해는 1530년이지만 오늘날에까지 서양 예절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다. 그는 책을 통해 기품이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이 곧장 알아보기 마련이며 내면이 드러나는 몸가짐으로써 예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사는 예나 지금이나 예절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태도다. 무엇보다 진심을 담아 건네는 인사는 누구라도 그 품격을 알아보기 마련이다. 인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피로하고 불편해야 할 일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호의를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하고 받는 이는 답례해야 한다. 간단하게 목례를 하거나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불과 몇 초간의 짧은 시간을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인사를 나누며 환대하는 그 순간 결국 자신과의 관계가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이로써 서로의 세상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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