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점에 묵상 한 편…88개의 십자가
2024년 06월 14일(금) 00:00
십자가 묵상-이성수 지음
28일 북토크·자화상 그리기 진행
책에 실린 88점의 십자가 작품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회화가 좋은 것은 이 무거운 막대기를 공중에 띄울 수도, 바람에 날릴 수도, 그것의 움직임을 그려 넣을 수도 있다”라는 이성수 작가의 말처럼, 십자가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시공을 구분할 수 없는 공간에 우뚝 서 있고 화려한 색채의 향연 속에, 때론 깊은 심연 속에 잠겨 있기도 한다. 각각의 십자가 작품과 함께 실린 글에는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종교와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이성수 그림 산문집 ‘십자가 묵상-신의 사랑과 구언, 그 역설에 대하여’가 출간됐다. ‘십자가’, ‘죄’, ‘선택’. ‘구원’, ‘믿음’, ‘사랑’, ‘예술’ 등 모두 12장으로 구성한 책에는 그가 1년간 작업한 십자가 연작 100점 중 ‘눈은 따뜻하다’, ‘바늘 끝에서’ 등 88점과 함께 묵직한 사색의 기록이 함께 실렸다. 십자가 그림과 글로 써내려간, 한 작가의 ‘구도의 여정’을 오롯이 만날 수 있는 책인 셈이다.

그가 생각하는 십자가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있다. 희생과 처벌, 폭력과 용서, 피와 땀, 절망과 구원, 빛과 어둠, 농담과 진실 등 서로 대립된 단어로 표현되지만 결국 “양쪽이 서로 시소를 타듯 오늘의 상황에 균형을 맞춰 움직이며 새롭게 진실을 정립”하고 있기에 “내가 아는 어떤 다른 상징보다 단순하고 강렬하며 모순되며 진실된” 십자가를 화폭에 풀어놓기로 결심한다.

십자가를 기존의 익숙한 방식이 아닌, 화가 고유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그는 십자가를 부러뜨리기도 하면서 실험을 지속한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십자가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한 그림에 한 편씩 실은 묵상의 기록은 죄와 구원의 의미,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에 대한 차이, 예술과 기독교에 대한 견해, ‘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신을 향한 예술’을 지향하는 삶, 타 종교인을 만났을 때의 믿음의 충돌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누구에게나 성인(聖人)의 순간이 있다’라는 주제로 이상적 순간을 포착한 ‘핑크맨’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한편 이번 책 발간을 기념해 북토크와 자화상 그리기 행사도 열린다. 오는 28일 오후 2시 그랑빌 더 포레(광주시 서구 개금길 77-14)에서 열리는 이번 토크에서는 도서 평론가 김성신이 함께 자리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독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자화상 그리기’(오전 10시30분~11시30분, 오후 3시30분~4시30분) 행사도 진행된다. 자아를 찾아가는 구도의 방법으로 이 작가가 오랫동안 지속해 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2만2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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