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이 남긴 것들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06월 11일(화) 22:00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음주 뺑소니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 국민적인 관심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할 법한 그의 사법방해와 범죄 경위에 쏠려 있는 듯하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김호중 개인의 몰락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회사 최대 주주의 파산이라는 데 있다. 그의 소속사인 생각엔터테인먼트는 “향후 매니지먼트 사업 지속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은 임직원 전원 사퇴, 대표 교체를 결정하고 사실상 폐업을 준비 중이라고 전한다.

김호중과 이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던 배우 손호준·김광규, 셰프 정호영, 축구선수 출신 방송인 이동국, 개그맨 허경환 등은 어떻게든 털고 일어날 것이다. 계약을 해지하고 각자 도생하는 스타들의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를 보필하기 위해 땀흘렸던 직원, 공연 스태프들의 밥벌이는 막막해졌다. 일터가 없어진 가장과 가족의 삶은 처참해진다. 김호중 팬들에게는 우상의 추락이 안타깝겠지만, 내 눈에는 암울한 현실에 직면할 그들의 삶이 어른거린다. 김호중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나”라고 입을 닫을게 아니라 삶이 일그러질 ‘을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했어야 한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자신도 무대 주변을 맴돌던 ‘을’ 아니었던가.



공범들 사이에서 저항한 22살 청년

김호중의 사법방해 드라마에는 여러 등장 인물이 있다. 매니저에게 허위 자수를 지시한 소속사 대표, 김씨의 옷을 입고 경찰에 허위 자수한 매니저, 김씨 차량 블랙박스를 삼켰다고 진술한 본부장. 이들은 김호중을 살리기 위해, 회사 생존을 위해 나름 선택을 했다. 자신의 삶과 가족 걱정에 몸부림쳤을 것이고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고민의 결과는 범죄자를 도운 피의자라는 남루한 팩트 뿐이다.

유사한 고민을 했지만 다른 선택을 한 막내 매니저도 있다. 22세 사회 초년생인 그는 수차례 김호중이 전화해 허위자수를 종용했음에도 ‘겁이 난다’며 거절했다. 김씨의 부탁을 어렵사리 뿌리쳤던 매니저의 고민을 어림 짐작할 수 있다. ‘쫓겨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둬야 할까’, ‘배신자 소리를 듣지 않을까, 죄 지은 놈 따로 있는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해야하나’ 등등 오만 생각이 스쳤으리라. 결국 그는 내면에서 우러나온 ‘두려움’에 굴복했다. 나약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죄를 뒤집어 썼을 때 닥쳐올 감당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다. 해야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최소한이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이 젊은이를 통해 김호중 사건에서 잠깐 스치는 빛을 봤다면 과언일까. 김호중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영장 담당 판사의 꾸짖음이 그나마 이 청년에게 작은 위로였다. “모두 같은 사람인데 김호중을 위해 힘 없는 사회 초년생인 막내 매니저는 처벌을 받아도 되는 것이냐.”

김호중에게는 세 차례 회생의 기회가 있었다. 음주 사고 후 정중하게 운전자에게 사과하고 처벌받았으면 될 일이다. 상식으로 처리하지 않아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도주치상,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사고후 미조치, 범인도피교사 등 혐의만 늘었다. 한 2년쯤 자숙하고 여느 연예인처럼 슬그머니 재기를 노려볼 수도 있었다.



범법 행위 덮으려다 자해적 결말

김호중은 막내 매니저가 거절했을 때 멈췄어야 했다. 적신호에도 엑셀레이터를 더 밟아 자해적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팬과의 약속을 내세워 공연을 할수도 있다고 본다. 상식밖 처사지만, 여기에서도 퇴로가 있었다. 가황 나훈아처럼 멋진 퇴장사는 아니더라도 “이제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못할 것 같다. 공연을 마치고 팬들의 사랑을 배신한 죄값을 받아야 한다.” 이 정도 멘트라도 했다면 비난 여론이 마냥 들끓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경로를 이탈한 그는 “모든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모든 죄와 상처는 내가 받겠다”고 말했다. 팬들은 사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이건 사과가 아니다. 놀랍게도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낸 거물급 변호사가 “그동안 한순간의 거짓으로 국민을 화나게 했고, 뒤늦게라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 국민이 노여움을 풀어주시기 바란다”라고 대신 사과했다. 어찌 그리 사과에 인색한 것은 정치인들을 꼭 빼닮았을까.

김호중의 막장 드라마 어느 대목에는 우리 모습이 어른거린다.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벼랑 끝에 매달려 손을 놓아야할 정도로 절박할 때도 온다. 하지만 실수를 만회하려다 꼼수를 쓰면 실패한다. 김호중이 일깨워준 교훈이 있다면, 상식과 양심이 새삼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 못할 짓을 남에게 시켜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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