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과 지역 의료 살리기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03월 26일(화) 22:00 가가
정부가 최근 의대 정원 2000명을 대학별로 배정했다. 전남대와 조선대를 비롯한 비수도권 의대에 증원분의 82%를 ‘몰빵’했다. 전남대(배정 인원 200명)와 조선대(150명) 정원은 서울대(135명)보다 많다. 서울과 수도권 정원 배정이 20%에 그치자 고3 수험생, 학부모 등이 서울행정법원에 입학정원 증원처분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할 정도다. 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은 그만큼 파격적이다. 의료인력 고갈에 신음하는 비수도권 지방을 고려한 정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전남대 의대(현 정원 125명)는 올해 지역인재 선발 비율 72.8%를 적용해 신입생 91명을 선발했다. 이 기준을 단순 적용하면 전남대는 2025학년도에 올해보다 54명 늘어난 총 145명을 지역인재로 선발한다. 지역인재 선발 비율 57.6%를 적용해 올해 의대 신입생 72명을 뽑은 조선대(125명)는 2025학년도에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6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의대 공화국으로 통하는 대한민국의 비수도권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문호가 더 넓어지는 것이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 유입 기대
정부가 전공의들의 결사항전에도 불구하고 의대 증원을 밀어붙인 이유는 ‘낙수효과’ 때문이다.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의사가 넘쳐나면 자연스럽게 필수의료 분야에도 의사가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가야할 길이 한참 멀다. 필수의료,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부문의 의사 고갈 사태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고난도·고위험 분야지만 돈은 안 되는’ 영역이다. 실제 뇌동맥류 수술의 의료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지급하는 금액)는 2022년 기준 248만원인데 코 성형(290만원) 보다 낮다. 심지어 응급실 심폐소생술 의료수가는 15만원 선이다.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광주에서 분만 병원은 줄잡아 4곳, 전남의 시 단위 지역에도 분만산부인과가 손꼽을 정도로 적은 이유다. 광주지역 대학병원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산부인과의 경우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에다 자칫 의료사고라도 나면 소송까지 감내해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생계는 물론 미래가 불투명한 필수의료 분야에 인력이 유입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고 잘라 말한다.
국민의힘 조명희 위원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전국 의과대학 본과 학생 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을 물은 결과 ‘낮은 의료수가’가 근본 원인이라고 응답한 의대생이 49.2%로 가장 많았다.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19.9%), 과도한 업무 부담(16.2%) 등도 꼽혔다. 의대생 2000명 숫자에 가려진 현실이다. 필수의료 분야의 경우 의대 정원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대증요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 지역정착 방안 마련해야
우리나라의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졌고 올해는 연간 기준으로도 0.7명선이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암흑기에 광주·전남지역에서 소아과, 산부인과 의사가 지역에 뿌리내리길 바라는 것은 공상적이다. 김현지 서울대병원 권역응급센터 진료교수는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들려준다. “병원의 수입은 수가와 수요로 결정되고 결국 병원은 환자가 있어야 유지된다. 병원 역시 환자라는 수요가 있어야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이다. 정부가 아무리 수가를 올려도 수요가 없다면 수입이 유지될 수 없다.”
그의 진단은 특히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전남지역에 유효하다. 필수의료 분야가 붕괴된 전남지역 의료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는 1989년 도입했다 폐지한 진료권 제도를 다시 도입해야할지도 모른다. 의료보험증에 표시된 중진료권에서 진료 받도록 하고, 다른 진료권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보험자의 승인을 받도록 했던 제도다. 이 제도는 환자의 대형병원 이탈을 막아 지역 의료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했으나 국민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결국 의료개혁은 국민이 함께 고민해야할 사안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축으로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어디서나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의대 증원 2000명이라는 폭탄보다는 정밀 타격을 위한 요격 미사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턱대고 의대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필수·지역 의료 분야 근무를 조건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장학금을 주는 등 구체적이고 선명한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하려면 완결형 종합 처방이 필요하다. 의대 증원이 단지 의사수만 늘리는 졸속책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정부가 전공의들의 결사항전에도 불구하고 의대 증원을 밀어붙인 이유는 ‘낙수효과’ 때문이다.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의사가 넘쳐나면 자연스럽게 필수의료 분야에도 의사가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가야할 길이 한참 멀다. 필수의료,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부문의 의사 고갈 사태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고난도·고위험 분야지만 돈은 안 되는’ 영역이다. 실제 뇌동맥류 수술의 의료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지급하는 금액)는 2022년 기준 248만원인데 코 성형(290만원) 보다 낮다. 심지어 응급실 심폐소생술 의료수가는 15만원 선이다.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광주에서 분만 병원은 줄잡아 4곳, 전남의 시 단위 지역에도 분만산부인과가 손꼽을 정도로 적은 이유다. 광주지역 대학병원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산부인과의 경우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에다 자칫 의료사고라도 나면 소송까지 감내해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생계는 물론 미래가 불투명한 필수의료 분야에 인력이 유입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고 잘라 말한다.
◇의사 지역정착 방안 마련해야
우리나라의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졌고 올해는 연간 기준으로도 0.7명선이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암흑기에 광주·전남지역에서 소아과, 산부인과 의사가 지역에 뿌리내리길 바라는 것은 공상적이다. 김현지 서울대병원 권역응급센터 진료교수는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들려준다. “병원의 수입은 수가와 수요로 결정되고 결국 병원은 환자가 있어야 유지된다. 병원 역시 환자라는 수요가 있어야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이다. 정부가 아무리 수가를 올려도 수요가 없다면 수입이 유지될 수 없다.”
그의 진단은 특히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전남지역에 유효하다. 필수의료 분야가 붕괴된 전남지역 의료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는 1989년 도입했다 폐지한 진료권 제도를 다시 도입해야할지도 모른다. 의료보험증에 표시된 중진료권에서 진료 받도록 하고, 다른 진료권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보험자의 승인을 받도록 했던 제도다. 이 제도는 환자의 대형병원 이탈을 막아 지역 의료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했으나 국민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결국 의료개혁은 국민이 함께 고민해야할 사안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축으로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어디서나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의대 증원 2000명이라는 폭탄보다는 정밀 타격을 위한 요격 미사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턱대고 의대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필수·지역 의료 분야 근무를 조건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장학금을 주는 등 구체적이고 선명한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하려면 완결형 종합 처방이 필요하다. 의대 증원이 단지 의사수만 늘리는 졸속책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