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를 위한 미술관은 없다? - 박진현 문화·예향담당 국장
2024년 03월 19일(화) 21:30 가가
며칠 전, 출근길 차안에서 라디오를 듣던 중 한 청취자의 사연이 귀에 꽂혔다. 지난해 35년간 근무했던 직장에서 퇴직했다는 그는 아침 식사 후 아파트 주변 공원에서 산책하는 게 ‘루틴’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그날이 그날인’ 단조로운 일상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별다른 취미도 없어 무료한 나날을 보내다 사회복지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며 비제의 카르멘 서곡을 틀어달라고 했다. 경쾌한 리듬의 신청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생면부지의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지’ 못한 채 수십 여년 간 앞만 바라보며 달려온 그의 세월이 왠지 짠하게 느껴져서다.
미술관 로비에서 서성이는 이유
그로부터 며칠 후, 취재차 들른 광주시립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 미술관이 있는 광주시 북구 용봉동 중외공원은 평소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평일 낮에는 직장에서 은퇴하거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그날’은 공원 보다는 미술관 로비에 앉아 있는 이들이 더 많았다. 오는 7월 완공을 목표로 미술관 옆에 아시아예술정원을 조성하는 공사로 동선이 좁아진데다 쌀쌀한 날씨까지 겹치자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인상적인 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때우는 모습이었다. 게중에는 미술관에 들어온 김에 전시장으로 향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림 대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미술관 밖을 무심히 바라 보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른다거나 전시장에 들어가는 게 쑥쓰럽다는 등 이유도 다양했다. 평소 문화를 ‘가까이할 ’ 기회를 갖지 못하다 보니 미술관 ‘문턱’을 넘기가 망설여진 것이다.
그 순간, 10여 년 전 미국 시라큐스 중심가에서 우연히 만난 60대 어르신의 ‘들뜬’ 표정이 오버랩됐다. 버스기사로 30년간 일했다는 그는 새로운 전시나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아내와 함께 주 1회 이상 미술관을 찾는다고 자랑했다. 특별한 전시가 없을 땐 미술관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다는 그는 은퇴가 가져다준 ‘문화가 있는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평생 버스기사로 일했던 그를 미술관의 세계로 안내한 건 ‘교육’이었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없어 망설였던 그는 아내의 권유로 에버슨 미술관의 ‘시니어 강좌’에 등록하면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졌다. 시니어 수강생에 맞춰 특화된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예술을 즐기는 눈이 ‘트이게’ 된 것이다. 비슷한 나이의 수강생들과 미술에 대한 관심사는 물론 소소한 일상을 나누다 보니 미술관이 제2의 인생학교가 됐다고 한다.
사실, 3만 5000개의 미술관을 보유한 미국에서 정년퇴직한 60세 이상 시니어는 ‘귀하신 손님’이다. 시간적인 여유와 세월의 연륜을 지닌 이들은 문화체험 등 새로운 배움에 목말라하는 적극적인 소비자(active senior)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미술관들이 영아, 유아, 어린이, 청소년, 성인, 시니어 등 연령별로 세분화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60세 이상 시니어들을 겨냥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엘더호스텔(Elder hostel)’은 국제 미술계에서 유명하다. 유스호스텔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프로그램으로 5박6일 동안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 등을 투어하며 수강생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참가자들은 미술관 인근에 마련된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 삶의 활력을 얻는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은퇴 이후에도 제2의 삶에 도전하는 액티브 시니어(50~60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기존 실버세대와 달리 가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기계발과 여가활동 등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이들이다. 2023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광주지역의 65세 이상 시니어는 16.5%(23만 3878명)로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평생학습 교육이 요구되고 있다.
문화생활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
하지만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광주는 이같은 흐름에서 한발짝 비켜서 있는 듯 하다. 광주시립미술관은 물론 광주문화재단, ACC, 광주예술의전당 등 지역의 문화예술기관들은 액티브 시니어들을 유인하는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부족하다. 시립미술관의 경우 1992년 개관이후 30여 년 동안 ‘관성적으로’ 운영해온 프로그램들이다 보니 이들의 ‘변화된’ 욕구를 충족시키는 콘텐츠가 빈약하다. 공연문화를 주도하는 광주예술의전당 역시 신중년 세대들을 낮시간대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세분화된 강좌를 보기 힘들다.
요즘 지난해 말 발간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의 경비원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 刊)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 메트의 경비원으로 10년 근무한 저자가 세상의 축소판 같은 미술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스토리가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올해는 예술로 삶의 활력을 되찾는 배움의 장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젠 미술관 로비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전시장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도록.
미술관 로비에서 서성이는 이유
그로부터 며칠 후, 취재차 들른 광주시립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 미술관이 있는 광주시 북구 용봉동 중외공원은 평소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평일 낮에는 직장에서 은퇴하거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그날’은 공원 보다는 미술관 로비에 앉아 있는 이들이 더 많았다. 오는 7월 완공을 목표로 미술관 옆에 아시아예술정원을 조성하는 공사로 동선이 좁아진데다 쌀쌀한 날씨까지 겹치자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평생 버스기사로 일했던 그를 미술관의 세계로 안내한 건 ‘교육’이었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없어 망설였던 그는 아내의 권유로 에버슨 미술관의 ‘시니어 강좌’에 등록하면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졌다. 시니어 수강생에 맞춰 특화된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예술을 즐기는 눈이 ‘트이게’ 된 것이다. 비슷한 나이의 수강생들과 미술에 대한 관심사는 물론 소소한 일상을 나누다 보니 미술관이 제2의 인생학교가 됐다고 한다.
사실, 3만 5000개의 미술관을 보유한 미국에서 정년퇴직한 60세 이상 시니어는 ‘귀하신 손님’이다. 시간적인 여유와 세월의 연륜을 지닌 이들은 문화체험 등 새로운 배움에 목말라하는 적극적인 소비자(active senior)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미술관들이 영아, 유아, 어린이, 청소년, 성인, 시니어 등 연령별로 세분화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60세 이상 시니어들을 겨냥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엘더호스텔(Elder hostel)’은 국제 미술계에서 유명하다. 유스호스텔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프로그램으로 5박6일 동안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 등을 투어하며 수강생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참가자들은 미술관 인근에 마련된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 삶의 활력을 얻는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은퇴 이후에도 제2의 삶에 도전하는 액티브 시니어(50~60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기존 실버세대와 달리 가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기계발과 여가활동 등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이들이다. 2023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광주지역의 65세 이상 시니어는 16.5%(23만 3878명)로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평생학습 교육이 요구되고 있다.
문화생활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
하지만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광주는 이같은 흐름에서 한발짝 비켜서 있는 듯 하다. 광주시립미술관은 물론 광주문화재단, ACC, 광주예술의전당 등 지역의 문화예술기관들은 액티브 시니어들을 유인하는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부족하다. 시립미술관의 경우 1992년 개관이후 30여 년 동안 ‘관성적으로’ 운영해온 프로그램들이다 보니 이들의 ‘변화된’ 욕구를 충족시키는 콘텐츠가 빈약하다. 공연문화를 주도하는 광주예술의전당 역시 신중년 세대들을 낮시간대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세분화된 강좌를 보기 힘들다.
요즘 지난해 말 발간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의 경비원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 刊)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 메트의 경비원으로 10년 근무한 저자가 세상의 축소판 같은 미술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스토리가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올해는 예술로 삶의 활력을 되찾는 배움의 장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젠 미술관 로비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전시장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