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 노경수 광주대 도시·부동산학과 교수
2024년 02월 26일(월) 00:00 가가
지난 1월 중순부터 2월에 걸쳐 30일 동안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5개국 여행을 다녀왔다. 모든 여행이 유익하지만,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보통 세 가지 정도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나의 현재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즉 저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얼마나 갖은 게 많은가. 둘째 넓은 세상을 보면서 맹자가 말씀하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처럼, 큰 꿈과 용기와 자신감(배짱)이 커진다. 셋째 경이로운 자연 풍광, 대자연의 무한함과 대비되는 인간의 나약함이 보이면서 노자가 말씀하신 도(道,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겸손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안식년 중에 미국 도시를 여행하면서 떠올랐던 의문이 ‘아메리카는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는가?’, 또 ‘아메리카는 유럽에 정복당하게 되었는가?’였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명저인 ‘총,균,쇠’ 속에서 지리적 환경의 차이라고 그 답을 제시하였는데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은 동서로 긴 동일 위도지대로, 즉 유사한 기후대가 연결되어 있는 대륙이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 최초로 발생한 농업혁명이 동쪽으로 아시아(중국문명), 서쪽으로 이집트로 쉽게 전파되었다. 그리고 소나 말과 같은 큰 동물을 가축화하고 농경을 대규모화해 잉여농산물을 생산하고 수준 높은 문명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반면 수렵채집 수준의 유라시아인들이 빙하기에 베링해를 건너서 아메리카로 넘어갔다. 아메리카의 형상은 남북으로 긴 대륙이라 기후대가 상이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 특정 농작물이 재배되더라도 상위나 하위 위도지역으로 전파되기 어려웠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대형동물로는 라마와 알파카가 있었는데 가축화 할 수 없는 동물이었다. 결국 1500년대 초 스페인에 정복당할 때까지도 잉카제국 정도에만 농작물이 재배되었고 대부분 지역은 수렵채집을 하는 생활이었다.
전염병은 유럽인들이 남미를 정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럽에서 인간과 가축이 수천 년 동안 같이 살면서 가축의 질병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오면서 점차 면역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인과 함께 전파된 전염병 특히 천연두, 홍역 등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었던 원주민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결국 전염병은 전쟁과 함께 남미 원주민 수를 급격하게 감소시켰고, 이로 인해 부족해진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가 대규모로 강제 이주되었다.
또 한가지 의문은 ‘남미는 북미보다 가난한 나라가 되었는가?’였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북미와 남미는 유럽 각지에서 침략자, 이주자들이 각각 정착해나갔다.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이들은 대개 신교도인 칼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종교의 자유 갈구와 절대 가난 도피가 이주의 추동력이었다. 선행하면 천국 가느냐는 질문조차 신과의 거래시도로 보고 금지되었다. 구원에 관한 신의 뜻은 신의 영역으로 두고 인간은 극단적으로 성실·청빈하라는 강령이다. 모두의 성실·청빈한 생활을 위해 이들은 권력 분리의 제도를 만들고 민주주의 신념에 기초한 국가를 세운 것이다.
남미에 도착한 이들의 목적은 금은 보화의 획득이었다. 돈만 있으면 면죄부를 사서 천국도 얻을 수 있는 구교 국가 출신이었고 신분구분도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이들이 새 대륙에서 만든 사회는 인종·종교·신분의 기득권을 강고하게 하는 유기적 조직체에서 출발했고 공식보다는 비공식 관계가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로 깔려있었다. 그게 결국 지금 빈부격차 극심한 중남미의 도시 풍경을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의 의사출신으로 쿠바혁명을 성공시키고 볼리비아에서 생을 마감한 체 게바라, 국가경제발전의 모델로서 1980년대 운동권 학생의 관심을 받았던 종속이론, 가톨릭의 프란치스코교황의 아르헨티나 등과 함께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남미는 아직도 미지의 대륙이다. 그래서 버킷리스트의 여행지로 더욱 추천하고 싶다.
전염병은 유럽인들이 남미를 정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럽에서 인간과 가축이 수천 년 동안 같이 살면서 가축의 질병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오면서 점차 면역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인과 함께 전파된 전염병 특히 천연두, 홍역 등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었던 원주민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결국 전염병은 전쟁과 함께 남미 원주민 수를 급격하게 감소시켰고, 이로 인해 부족해진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가 대규모로 강제 이주되었다.
또 한가지 의문은 ‘남미는 북미보다 가난한 나라가 되었는가?’였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북미와 남미는 유럽 각지에서 침략자, 이주자들이 각각 정착해나갔다.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이들은 대개 신교도인 칼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종교의 자유 갈구와 절대 가난 도피가 이주의 추동력이었다. 선행하면 천국 가느냐는 질문조차 신과의 거래시도로 보고 금지되었다. 구원에 관한 신의 뜻은 신의 영역으로 두고 인간은 극단적으로 성실·청빈하라는 강령이다. 모두의 성실·청빈한 생활을 위해 이들은 권력 분리의 제도를 만들고 민주주의 신념에 기초한 국가를 세운 것이다.
남미에 도착한 이들의 목적은 금은 보화의 획득이었다. 돈만 있으면 면죄부를 사서 천국도 얻을 수 있는 구교 국가 출신이었고 신분구분도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이들이 새 대륙에서 만든 사회는 인종·종교·신분의 기득권을 강고하게 하는 유기적 조직체에서 출발했고 공식보다는 비공식 관계가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로 깔려있었다. 그게 결국 지금 빈부격차 극심한 중남미의 도시 풍경을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의 의사출신으로 쿠바혁명을 성공시키고 볼리비아에서 생을 마감한 체 게바라, 국가경제발전의 모델로서 1980년대 운동권 학생의 관심을 받았던 종속이론, 가톨릭의 프란치스코교황의 아르헨티나 등과 함께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남미는 아직도 미지의 대륙이다. 그래서 버킷리스트의 여행지로 더욱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