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집’의 결말 -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4년 01월 29일(월) 00:00
혼자서 밥을 먹으면 밥맛이 없다는 말을 흔히들 하곤 했다. 어디 밥맛 뿐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 말은 어디 서고 쓸데 없는 말이 된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인의 집에 대한 생각이 담긴 자료를 보고 든 생각이다.

스웨덴 홈퍼니싱 기업인 이케아는 지난 10년간 약 40여개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복한 집 생활’을 주제로 연구, 조사했다. 그리고 그 동안의 자료를 종합하여 올해 초 ‘2023 라이프 앳 홈 보고서’를 공개했다. 자료에는 ‘더 나은 집에서의 생활’을 위해서 ‘주도권’, ‘안락함’, ‘안전함’, ‘돌봄’, ‘소속감’, ‘즐거움’, ‘성취감’, ‘희망’이라는 8가지 니즈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에 대한 지구 사람들의 생각을 담았다.

조사 결과에서 한국인은 집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집 생활에 있어 가장 큰 즐거움으로 꼽았고 집에서 자녀를 키우는 데 보람을 느끼거나, 함께 사는 식구들과 웃고 지내는 시간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문항에서 세계 최하위를 차지했다. 아울러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속감을 느낀다는 문항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응답을 기록하면서 한국은 가족과 이웃에 거리를 둬도 괜찮은 사회, 이웃과의 소통에 관심이 없는 사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몇 해전 ‘요즘 출산율이라면 가정은 커녕 나라도 사라질 판’이란 문장이 담긴 어느 칼럼을 읽었을 때 만큼이나 자료에 나온 한국인이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을 보니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집은 이제 ‘우리 집’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무엇보다 혼자 온전히 느끼는 자유와 편안함이 가장 중요시 되는 공간이 되었다.

요즘 세대는 유년시절부터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끊임없는 경쟁 사회에서 버티느라 가령 현관을 열고 들어서며 맡는 구수한 찌개 냄새나 “어서 와”란 인사말을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가족이 함께여서 좋았던 그리고 특별한 기억 없이 편안한 휴식만 강조된 집에서 자란 세대들이 ‘나 홀로’ 집을 행복한 집으로 손 꼽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함께 나누어야 하는 귀찮은 일이 줄어들고 불편함 따위가 없는 집 생활이 최고의 집 생활일까. 존 S. 앨런은 신경과학과 고인류학의 연구 결과물을 바탕으로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며 집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했다. 그는 ‘집은 우리를 어떻게 인간으로 만들었나’라는 저서에서 “집은 세상 일에 지친 우리를 다시 회복하는 데 아주 탁월한 공간이다. 따라서 집의 느낌은 우리가 관계를 맺고 휴식하고 회복하면서 경험하는 느낌들에서 나온다”고 기술했다.

우리는 생물체의 외부 환경과 내부 환경이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에서도 생리적 상태를 항상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기능을 항상성이라고 배웠다. 생물체의 ‘항상성’처럼 집은 우리의 항상성을 위한 필수 공간이다. 그리고 신체의 항상성 유지가 호르몬과 자율신경계에서 조화로운 활동을 통해 유지되듯이 집의 항상성도 편안함이라는 단 한가지의 조건만 충족된다고 유지되진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행복학자들의 의견을 모은 연구 ‘더 큰 행복을 위한 방법’에서는 개인 차원에서 행복을 위한 전략으로 도출해낸 방안으로 가족, 친구와 함께하는 삶인 ‘사회적 연결’을 행복한 삶을 위해 우선으로 꼽았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자주 언급하는 이 시대에 안락함, 소속감, 성취감, 기쁨 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집’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집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한 가지 이상의 여러 가치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다. 우리는 한 때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자고가라고 방을 내주던 공감력 넘치던 민족이 아닌가. 그 후한 마음으로 타인까지도 나의 집에 품을 수 있었던 한국인이 집 생활의 행복을 나홀로만으론 꼽을 순 없지 않을까. 영화 ‘나홀로 집에’의 혼자가 된 케빈은 유쾌하게 위기를 넘기고 다시 부모를 만나게 된다. 부디 우리의 ‘나홀로 집에’도 지금과 다른 해피 엔딩의 결말이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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