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 유현아 지음
2023년 08월 04일(금) 08:00
시인은 곤고한 운명에 맞서 무수히 질문하는 자. 그 질문의 끝은 대부분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쪽으로 향해 있다. 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시는 때론 핍진하게, 혹은 미려한 언어로 불합리한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부당한 노동문제에 주목하는 유현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이 창비 시선 491번으로 출간됐다. 시인은 2006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 이후 10년 만에 이번 작품집을 펴냈다.

총 4부로 이뤄진 시집은 노동현실에 천착한다. 불합리한 일상에서 ‘공무원’, ‘당고개역’, ‘전광판’, ‘문방구’ 등 일상적 공간들을 바라보며 희망의 목소리를 메타포하는데, 시를 통해 소시민의 기계적 일상성을 파괴(러다이트)하려는 은유에 가까워보인다.

“그러니 사라져버린 구두와 슬리퍼와 운동화의 생사 따윈 몰라도 돼/ 한 짝씩 굴러다니는 운동화와 슬리퍼와 구두들은 마주치지 않기를”(‘2년’ 중에서)

위 시는 지하철 바닥에 모여있는 출근길 신발들을 보며 떠올린 시인의 단상에 다름 없다. 특별히 유려한 정경을 묘사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먼지쌓인 발들을 보며 노동현실을 그대로 탁본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렇지만 아침 출근길마다 ‘삐딱선’을 타고 싶은 현대인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을 적실한 언어로 드러낸다.

저자는 ‘시인의 말’에서 “여전히 출근하고 날마다 퇴사를 꿈꾸면서도 사라지고 있는 골목들을 걷는다 … 그래서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인 걸”이라고 표현한다. 인간들의 노동은 매일 반복되는 업화 같지만 고작 ‘손톱만큼’의 슬픔만을 남긴다. 자라나는 희망을 보며 내일을 견뎌 내라는 의미일까. <창비·1만원>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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