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옥수수 익어갈 때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3년 07월 10일(월) 00:00
더위가 예사롭지 않다. 콩밭과 옥수수밭이 금이 쩍쩍 갔다. 시골집에 가려고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기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자기 엄마 챙기듯, 우리도 좀 챙겨봐!”

김치와 양파장아찌를 담다가 도둑질하다 들킨 양, 멈칫 서고 만다. ‘자기’를 빼면 좋으련만 그 자기라는 가시가 가슴 깊게 파고든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길게 숨을 내쉬며 몇 가지 밑반찬을 더 담는다. 젊은이의 입맛도 빼앗아 가는 7월, 노인은 입맛도 쩍쩍 갈라진 논밭이나 다름없을 거다.

“옥수수 나왔을지 모르겠네.”

아내가 천연덕스럽게 화제를 바꾼다. 슬며시 아내를 본다. 낯빛이 어둡다. 작년과 재작년에 장인과 장모님이 1년 사이에 돌아가셨다. 코로나 때문에 요양병원에 계신 장모님에게 장인 어르신 돌아가신 사실도 알려주지 못했다. 장모님 역시 자식들 병간호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가셨다. 아내 상처가 컸다. 노인들을 보면 애처롭게 여기다가도 가끔 역정을 낸다. 살아계신 노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친부모님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을 거다.

옥수수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다. 하지만 지금은 대만 무성할 뿐 이제 겨우 알이 여물 즈음이다.

평소 어머니 말씀에 장단을 잘 맞춰주던 아내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이 꼭 어머니와 딸 같았다. 그렇게 둘이 친근하게 지냈는데, 아내가 그러니 마음이 착잡하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좀 그만해! 엄마 없는 사람 서러워서 어디 살겠어?”

노인 걱정 좀 했더니 되돌아온 말이다. 아내의 고성을 뒤로 하고 고향 집으로 향한다. 시골은 초입부터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무등산에는 소낙비가 간혹 왔는데, 화순은 사막이다.

그늘이 아니고선 한시도 서 있을 수 없다. 노인이 걱정되어 서둘러 밭으로 간다. 아니나 다를까. 그 무더위에 어머니는 고랑에 계신다. 옥수수 고랑과 물고랑, 그곳에서 낑낑거리며 바지런히 옥수수에 물을 주고 계신다.

난 서둘러 어머니의 두레박을 빼앗다시피 잡는다.

“시방 안 하면 열매가 안 열리지, 요 때 물을 줘야 알이 잘 여물어”

어쩌면 알곡 탓이지만 진심은 옥수수를 보고 함박웃음으로 달려올 둘째 며느리 생각으로 물을 주고 계셨을 것이다.

가뭄이 길어지고 갈증도 날로 심해진다. 갈증 중 최고는 목마름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은 노년이면 누구나 겪는 슬픔이고 고통이다.

옥수수의 모든 이파리는 는개나 이슬도 놓치지 않게 모아서 줄기를 통해 뿌리로 수분을 내려주는 구조다. 햇볕이라면 굳이 잎사귀를 양팔처럼 치켜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옥수수는 순전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수수 잎들이 마치 비를 내려달라고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흔히 소를 희생의 동물이라고 한다. 살아서는 노동력, 죽어서는 가죽과 살 그리고 뼈까지 다 주고 간다고들 한다. 옥수수도 마찬가지다. 알맹이는 물론이려니와 수염은 차나 약으로, 줄기는 사탕수수로, 잎은 사료로 쓰인다. 뿌리마저 벌레들이 가장 좋아한다.

한 알 한 알이 가지런히 박힌 옥수수알, 그건 어머니의 하루하루 정돈된 삶이 알로 여문 것 같다. 우리의 삶도 어머니처럼 혹은 옥수수처럼 한 알 한 알 잘 여물기를 바란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이 전해질 때가 많다. 먹거리는 더욱 그렇다. 옥수수가 익고 있다. 밭에서 익어가던 어머니의 옥수수가 우리 집 냄비에서 또 뜨겁게 익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의 관계가 찰진 옥수수처럼 착 달라붙었으면 좋겠다. 옥수수의 맛보다 어머니의 마음이, 아내에게 달곰하고 새곰하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의 날것 인생도 저리 푹푹 삶아져서 야들야들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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