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 논란, 사라진 책임 정치-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2023년 06월 28일(수) 00:00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가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어민 등 수산업계 종사자는 물론 국민 대다수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정부는 일본 정부를 대신(?)해 날마다 브리핑을 열고 무조건 안전하다고 말한다. 여당은 광우병 사태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까지 거론하며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측을 향해 ‘괴담’이라고 항변하고, 대책 없는 야당은 단식 농성으로 맞서고 있다.

오염수 방류 문제가 대한민국을 흔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국민의 건강과 수산업계의 존망이 걸린 문제인데 지금 이보다 더 중요한 현안이 어디 있겠는가.



일본 정부 입장 대변하는 한국 정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해양 방류에 사용하는 해저터널 공사를 완료했고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만 기다리고 있다. 다음 달 4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최종 보고서를 받으면 머지않아 방류가 이뤄질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30여 년 동안 진행된다. 방류가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는 만큼 결정 전에 막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권의 최우선 과제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어떠한가. 정부는 면밀한 조사와 데이터를 근거로 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하기보다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모양새다. 매일 일일 브리핑을 하는데 그제 브리핑에선 “방류 결정 자체를 되돌려서 IAEA와 다른 방식을 제안하는 것은 신의 성실 원칙에 맞지않는 태도”라고 밝혔다. 신의 성실 원칙이라니.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정부가 할 말은 아니다. 일본이나 IAEA와 방류에 대한 의견 조율을 끝냈단 말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IAEA는 핵 산업을 보호하는 국제기구다. 원자력 강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IAEA의 보고서를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든 이유다.

국민의 건강과 주권을 책임지는 정부라면 국민 입장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일본 내에서조차 방류보다 오염수를 콘크리트 등으로 고체화해 자국에 보관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마당에 우리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국민 설득에 주력하는 것은 코미디다.

다른 나라를 보자. 일본 수산물 수입 2위 국가인 홍콩은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을 일본 정부에 분명하게 전달했다. 수산물 방사능 검사 대상을 일본 전역으로 확대한데 이어 만약 방류할 경우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표명했다.

여당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횟집에서 회식하는 ‘먹방 정치’를 하고 있다. 수산물 소비 위축을 막아 보자는 취지는 알겠는데 ‘포퓰리즘 정치’나 다름없다.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을 향해 ‘괴담’이 아닌 ‘과학’으로 대응하라며 몇몇 원자력 교수들의 주장을 강요하는 것은 비겁한 정치다.

야당의 대응도 미흡하긴 마찬가지다. 대결 정치에만 익숙하다 보니 오염수를 방류해선 안 될 명분을 과학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단식 농성과 방류 철회 촉구 결의안의 상임위 단독 처리에 나서는 등 대증 요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형 선고” 어민들의 절규 경청해야

지난 23일 완도에선 어민 800여 명이 모여 대규모 해상 시위를 벌였다. 어민들은 “일본은 4조 규모의 어민 대책을 세우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오히려 오염수가 위험하지 않다는 듯 이야기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원전 오염수 결사 반대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전남은 수산물 최대 산지다. 국내 수산물 생산량의 60%가 전남에서 나오고 어업 인구의 38%, 어선 수의 42%가 전남에 있다. 살아남기 위해 원전 오염수 피해가 덜 할 것으로 예상되는 어종(魚種)으로 바꾸는 어민들도 등장했다.

현장은 이렇듯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23일 해상 시위 현장에는 정부나 전남도 관계자도, 책임 있는 정치인도 없었다. ‘답은 늘 현장에 있다’는데 책임 정치는 실종됐다. 지금부터라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오염수 해법이 될 것이다.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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