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재킹 - 유제관 편집담당1국장
2023년 06월 23일(금) 00:30
TV 프로그램 ‘골때녀’에 박지성과 함께 출연해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준 만능 미드필더 루이스 피구. 이웃집 아저씨처럼 선한 얼굴 뒤로는 축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적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그림자도 있다. 선수 시절 스페인 프로축구 FC 바르셀로나의 간판 스타였다가 하루아침에 앙숙인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이 사건은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루이스 피구 사건-세기의 이적’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0년 당시 바르셀로나가 피구의 이적에 걸었던 바이아웃(buyout) 금액은 5600만 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720억 원이 넘는 거액. 그 돈을 지불하면 구단의 동의가 없어도 이적할 수 있지만 이를 감당할 구단은 없다는 게 바르셀로나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레알은 그 많은 돈을 내고 연봉을 네 배로 올려 주는 조건으로 피구를 빼돌렸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배신자”라 욕했지만 피구를 영입한 레알은 그해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빅이어를 들어 올렸고, 피구는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 나폴리를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으로 이끌고 최우수 수비상을 받은 김민재는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민재의 바이아웃 금액은 660억원. 뮌헨은 연봉 240억 원의 초특급 대우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축구의 희망 이강인도 프랑스의 명문 파리 생제르맹(PSG)으로 이적할 것으로 보인다. PSG가 갈락티코 전략을 버리고 ‘젊고 야망 있고 배고픈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어 이강인에 안성맞춤이라는 평이다.

스타 선수의 이적은 구단 유니폼을 입고 계약서에 사인을 한 이후에야 알 수 있다. 피구처럼 극비리에 이적하는 경우가 있고, 비행기를 탔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행선지가 바뀌는 ‘하이재킹’(hijacking)이 일어나는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 시절 파리 생제르맹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은 뒤 AS 모나코와 사인을 했다. 김민재와 이강인의 이적은 두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축구 팬들이 주말 밤을 새우며 응원할 곳이 어느 나라 리그인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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