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3년 06월 13일(화) 23:00
누구에게나 ‘소울 푸드’가 있을 것이다. ‘영혼의 맛’이라는 뜻의 소울 푸드는 대개 어머니의 손맛과 연관돼 있다. 어떤 이는 고향의 정이 담긴 원초적인 맛을 소울 푸드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은 젖을 떼면서부터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을 접하고 점차 길들여진다. 어른이 된 후에도 어렸을 때 먹었던 어머니의 음식을 찾게 되고 그리워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 번쯤 누군가로부터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위로해줄 소울 푸드를 만난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다.

사전적 의미의 소울 푸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전통 음식’을 말한다. 백인들의 감시와 냉대를 참으며 위험한 일과 허드렛일을 해야 했던 흑인들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다. 그들에게 소울 푸드는 고통과 슬픔을 잊게 하는 원초적인 맛이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삶에 대한 통찰 담긴 100여 편의 시

얼마 전 ‘홍어’를 소재로 한 시집 한 권을 받았다. 모두 100여 편의 작품이 모두 ‘홍어’를 모티브로 하고 있어 흥미롭고 이색적이었다. 종합적인 홍어 인문서라 해도 무방할 만큼 시집은 홍어를 매개로 삶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문순태 소설가. 지난 3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 바깥 출입을 자제했던 그는 틈틈이 시를 썼다. ‘징소리’ ‘철쭉제’ ‘백제의 미소’ ‘타오르는 강’과 같은 소설로 한의 미학에 천착했던 작가는 이번 시집에서도 전라도 정서와 맛깔스러운 언어로 ‘홍어 시(詩)’를 펼쳐 보인다.

문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홍어다. 그를 취재하기 위해 만나거나 이런저런 일로 담양 생오지(작가의 생가)에 들을 때면 곧잘 홍어 이야기를 듣곤 했다. “홍어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전라도의 정체성이 깃든 음식”이라는 것이 그의 홍어에 대한 단상이다. 그의 설명을 부연하자면 이렇다.

“음식에 정과 혼이 담기는 것은 꽃이 빛깔과 향기를 품는 것과 같다. 맛의 깊이는 혀끝이 아닌 마음이 먼저 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문화와 정서가 깃들어 있는 정신적 가치가 되었다. 남도의 대표적 전통 음식의 하나인 홍어는 백성의 물고기이자 민초들의 고통과 눈물이 오롯이 배어 있는 정신적 가치이기도 하다.”

문 작가가 처음 홍어를 맛본 것은 소년 때였다. “할머니 저승 가신 날 코 불며 먹었던 홍어, 희한한 맛에 놀라 눈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 졸업식 날 홍어를 안주 삼아 실신할 정도로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의 홍어 사랑은 영산포 과수원집 외동딸인 아내를 만나면서 깊어졌다. 스물세 살 때 아내를 만나 영산강 둑길을 거닐던 추억 저편에는 홍어 집산지 영산포의 풍경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통과 의례와 같은 지점마다 홍어는 그에게 늘 위안과 고향의 맛을 환기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애호가답게 홍어의 맛을 ‘1 코’ ‘2 애’ ‘3 날개’ 순으로 소개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홍어 삼합을 비롯해 무침, 튀김, 탕, 전, 애국 등 홍어를 주재료로 한 음식에 대한 상찬도 읽는 맛을 더한다.



삭힘의 미학 그리고 소울 푸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전라도를 폄하하는 수단으로 ‘홍어’를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문적 소양 결여 내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 무엇보다 공감 능력의 상실에서 비롯된 혐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 작가는 “전라도 사람들이 삭힌 홍어를 사랑하는 이유는 발효의 고통을 오롯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며 “짓밟힐수록 강해지는 것처럼 썩힐수록 제 맛을 뿜어내는 발효는 오랜 시간 암흑 속에서 고통과 서러움의 내적 변화 과정을 통해 거듭남을 뜻하는 것이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은 홍어의 생태적 습성과도 일정 부분 연계된다. 즉 부레가 없는 탓에 떠 있지 못하고 바닥에 배를 깔고 사는 홍어는 낮은 땅에 엎드려 한을 품고 살아왔던 전라도 사람들과 닮았다는 것이다. 고통을 통해 숙성될수록 더 깊고 따뜻하고 웅숭깊은 인간애를 느끼게 되는 이치와도 맞물린다.

언급한 대로 누구에게나 소울 푸드는 있기 마련이다. 지치고 힘들 때 고향과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것은 존재와 존재를 잇는, 세계와 세계를 잇는 원초적인 맛일 게다. 노(老) 작가가 삭힘으로 대변되는 홍어를 좋아하는 것은 톡 쏘는 향도 향이지만, 아마도 그리움으로 축적된 기억을 되살려 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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