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진 시대 1~3권 - 남영 지음
2023년 05월 12일(금) 00:00 가가
어제의 과학에서 이 시대를 반추하다
“나는 나의 죽음을 보았다.” X선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촬영된 자신의 손 사진을 본 뢴트겐의 부인 안나의 말이다. 1895년 11월, 뢴트겐은 크룩스관(개량된 음극선관) 실험 중에 우연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복사선을 발견하고 ‘X선’으로 이름 붙였다. 이후 X선은 방사선과 전자 발견 등 새로운 현대 물리학의 출발을 촉발시켰다.
그리고 50년이 흐른 1945년 7월, 미국 뉴멕시코 사막지대 ‘트리니티’에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으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참관하던 오펜하이머는 ‘천개의 태양’보다 밝은 폭발 후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때 힌두 경전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남영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가 펴낸 ‘휘어진 시대’는 원자시대의 시작부터 원자폭탄의 출현까지를 3권에 담았다.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시리즈 첫 번째 책인 ‘태양을 멈춘 사람들’(2017년)을 출간한 후 6년만이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21세기 첨단 과학문명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19세기 말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과학의 역사를 제대로 모른다. 동학농민혁명과 갑신정변, 국권침탈로 이어지던 그 시기, 유럽에서는 새로운 현대 물리학이 태동하고 있었다. 투과성이 강한 복사선(방사능)에서 비롯돼 전자 발견, 원자구조·양자역학 연구로 나아갔다. 1905년 스위스 특허청 직원이었던 26살 아인슈타인은 ‘E=mc²’이라는 유명한 공식을 담은 짧은 논문 등 6편을 발표한다. 기존 시간과 공간, 에너지와 질량에 대한 개념이 바뀐 ‘기적의 해’였다. 나중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오 실라드는 1933년 핵분열 과정에서 원자무기를 떠올렸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나치 독일과 미국에서 경쟁적인 원자폭탄 개발로 실현됐다.
저자는 20세기 초반 현대 물리학의 대격변을 설명할 상징어로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의 ‘휘어짐’을 꼽고 이때를 ‘휘어진 시대’로 표현한다. ‘과학과 시대와 인간 군상들의 고귀함과 저열함을 모두 함축한 중의적 표현’이라고 한다.
1권(1896~1919년)은 ‘원자시대의 시작과 상대성이론의 탄생’, 2권(1920~1939년)은 ‘양자역학의 성립과 과학낙원의 해체’, 3권(1939~1945년)은 ‘원자폭탄의 출현과 거대과학의 시대’를 다룬다. 저자는 피에르·마리 퀴리 부부를 비롯해 막스 플랑크, 알버트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등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현대 물리학의 전개과정을 6개의 시대로 구분해 들려준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 현대 물리학의 개념과 용어들이 어렵지만 현재의 과학문명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현대 물리학, 과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원자폭탄의 발명으로 야누스의 모습을 띤 과학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제까지의 과학을 확인하고 나면, 우리는 이 시대를 반추할 힘을 얻고, 오늘 이후 과학의 얼개를 조심스럽게 설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궁리·각 권 2만8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남영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가 펴낸 ‘휘어진 시대’는 원자시대의 시작부터 원자폭탄의 출현까지를 3권에 담았다.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시리즈 첫 번째 책인 ‘태양을 멈춘 사람들’(2017년)을 출간한 후 6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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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과학을 확인하고 나면, 우리는 이 시대를 반추할 힘을 얻고, 오늘 이후 과학의 얼개를 조심스럽게 설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궁리·각 권 2만8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