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자성 없이 희망꽃은 피지 않는다- 이지현 5·18부상자동지회 초대 회장, 연극인
2023년 03월 16일(목) 23:00
1980년 5월 이후 양식 있는 사람들은 43년 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날의 슬픔을 가슴에 품은 학생들은 가방 속에 책 대신 유인물을 넣고 다녔다. 도서관이 아닌 아스팔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다. 광주에 부채 의식을 느낀 국민들은 5월의 진실 규명과 학살 원흉 처단이란 시대적 과제를 위해 싸웠고,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물길을 만들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이뤄냈다.

이후 40년이 지나도록 민주화는 숱한 위기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 그 속에서 5월 또한 굳건하게 버텨왔지만, 항상 5월의 일부 단체가 말썽이었다. 지난 1994년에는 5·18기념재단 설립의 주도권을 놓고 양분돼 치열하게 대치했다.

2007년엔 옛 전남도청 원형 보존에 대한 입장 차로 다시 분열돼 이른바 ‘5월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급기야 연합군 성격의 광주 시민단체들의 중재 덕분에 종지부를 찍었고 옛 전남도청은 원형 보존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이러한 분열·분란의 중심에는 항상 주먹밥 공동체이자 대동 정신의 5월을 사유화하려는 세력이 있었다. 올해도 이러한 움직임이 다시금 나타났다. 2023년 2월 19일 특전사와의 ‘대국민 기만쇼’가 바로 그것이다. 가해자인 특전사의 진정 어린 사죄와 진상 규명에 대한 노력은 없었고 피해자들에게 무작정 용서와 화해만을 요구하는 또 다른 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특히 1980년 이후 오월을 지지해 준 광주·전남 시민사회단체와 논의도 없이 대국민 공동 선언을 기획한 두 단체가 숭고한 국립 5·18민주묘지를 군사 작전하듯 기습 참배해 빈축을 샀다.

이에 5·18민주화운동 유족회는 이들과 같이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지켜보던 광주·전남 시민단체들은 지난 2월 23일 5·18부상자회와 5·18공로자회의 행태를 응징하기 위해 ‘5월 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두 단체에 사죄와 공동 선언 폐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두 단체는 이조차 거절하고 징계를 의식해 ‘43주년 5·18 기념행사위원회’ 탈퇴를 선언했다. 행사위원회는 5월 정신을 훼손한 두 단체를 제명키로 했으나 두 단체는 적반하장으로 행사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는 추태를 부리고 있다.

사면초가에 몰린 두 단체는 지난 13일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규명 위원회에서 조사받은 적 있는 계엄군 출신 인사를 초청해 ‘고백과 증언’ 행사를 진행하며 하여 반전을 꾀했다. 모양새는 좋았으나 과거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나온 증언을 되풀이하는 데 그쳐 ‘재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어떠한 논의도 없이 일방적인 용서와 화해를 요구하는 것은 결국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꼴이다.

부상자회의 입장에 반대하는 유공자들이 세운 ‘5월 바로 세우기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18일로 예정된 부상자회 총회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총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광주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작년 총회 선거 당시 사망자 200여 명이 선거인 명부에 포함된 점 등이 신청의 배경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투명한 회계 등에 대한 비공개, 비민주적 운영, 장기 집권을 위한 정관 개정, 20억 원 차용에 대한 승인 등에 대한 의혹도 이번 가처분 신청을 계기로 비대위가 밝혀내야 할 문제다.

5월은 민주주의 꽃이고 대한민국의 자긍심이며, 역사의 교훈이자 스승이다. 이를 사유화하려는 사람들은 역사의 철퇴를 면치 못할 것이다. 5월 단체의 자성과 시민들의 애정 어린 채찍질, 그리고 사랑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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