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최초 여의사 현덕신 삶을 조명하다
2023년 02월 20일(월) 20:20
조선대 이동순교수 ‘현덕신’ 펴내
이화학당 출신 日 동경으로 유학
독립운동가…여성 교육에 앞장

광주 현덕신병원 앞에서(1928년경). 앞줄 오른쪽에 현덕신과 아들 상옥이 있다.

광주 최초 여의사, 독립운동가, 유아교육과 여성교육에 앞장….

현덕신(1896~1963)은 이화학당 출신 최최 광주 여성 의료인이다.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석아(石啞) 최원순(1896~1936)이 그의 남편이다. 현덕신과 최원순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광주의 교육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들다.

현덕신의 삶을 조명한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조선대 기초교육대학 자유전공학부 이동순 교수가 펴낸 ‘조선의 여성을 위해 의사가 된 독립운동가 현덕신’(이화여자대학교 출판문화원)은 조국과 여성을 향한 사랑과 헌신의 삶을 담고 있다.

이 교수가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지난해 봄 이화의료원에서 현덕신 선생에 대해 알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서였다. 이화의료원은 과거에 현덕신이 근무했던 동대문부인병원을 계승한 병원이다.

이 교수는 “당시 유경하 의료원장님은 현덕신 선생님의 후배로서 부끄럽다는 얘기와 더불어 평전을 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며 “특별히 현덕신의 생애를 복원하여 역사적인 자리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집필 이유를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현덕신에 대해 “몇 안 되는 조선의 여성 의사로 사회적 책무를 등에 짊어진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 여걸”이라고 명료하게 덧붙였다.

황해도 용강에서 태어난 현덕신은 소학교 졸업 후 오빠를 따라 평양으로 이사한다. 이듬해 이화학당에 입학하지만 이후 1916년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다.

현덕신은 일본 유학시절 암울한 식민지 조국 현실을 절감하고 조국 독립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자각한다. 1919년 1월 독립자금 40원을 김마리아를 통해 2·8독립선언 준비금으로 건넨다. 그해 2월 8일에는 일본 도쿄 조선 YMCA회관에서 개최된 2·8독립선언에 참여해 체포·유치된다.

또한 그는 일본 여자유학생친목회 임원으로 여자유학생을 규합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일제의 감시 대상자로 낙인이 찍혔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활동을 펼친다. 1921년 동경여자의학교를 조선 여성으로 정자영, 박정자, 허영숙에 이어 네 번째로 졸업하고 1922년 귀국한다. 이후 동대문부인병원 부인과와 소아과 의사로 활동하게 된다.

현덕신병원에서 진료 중인 현덕신.
현덕신과 최원순은 1923년 종로중앙예배당에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 유학을 마치고 1923년 귀국해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한 최원순은 언행일치, 정론직필로 총독정치를 비판했던 선각자였다. 총독부의 눈엣가시였던 최원순은 투옥에도 굴하지 않고 1927년 신간회 창립 발기인이자 임원으로 활약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최원순은 일제에 의한 투옥과 고초로 폐병을 얻어 1928년 고향인 광주로 내려온다. 광주천변에 석아정을 짓고 요양하며 민초들의 생존권을 위해 고군분투 한다. 이에 따라 현덕신은 1927년 10월 광주군 수기옥정 350번지에 현덕신병원을 개원한다.

그가 광주에서 환자를 살피는 것 외에 가장 먼저 한 일은 광주지회를 설립한 것이었다. 독립과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멈출 수 없는 과업이었다. 아울러 광주여자기독교청년회장을 맡아 여성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만주 조난동포구제 광주협회’를 결성해 김필례를 비롯해 최영균, 김용환, 최현숙과 집행위원으로 피란동포구호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광주에 신생유치원과 신생보육학교를 설립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독립운동을 했던 과감함과 여성운동을 펼쳤던 평등의 정신으로 유아를 교육하는 것이 조선의 미래를 여는 것으로 생각한 것. 1951년에는 신생보육학교를 개교해 교사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이 교수는 “현덕신의 삶을 고스란히 살려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실증적인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하려고 애썼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부족한 부분을 또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로 부족함에 변명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한편 최원순과 현덕신은 조선대 미대 학장을 지낸 최영훈 화백의 조부모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