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강향림 수필가
2023년 01월 18일(수) 01:00 가가
필자는 산책을 좋아한다. 틈만 나면 소호동(여수시)까지 걷는다. 소호동에 자리한 동동다리는 여수의 관광지 중 하나다. 지난 초겨울 산책을 하며 느꼈던 느낌이 새로운 감성으로 남아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면 소호동으로 넘어가게 된다. 카디건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 도로 갓길로 접어들었을 때다. 몇 분을 걸었을까?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나쳐온 길에서 날아오르는 냄새다. 달콤한 향에 허기가 진다. 뒤돌아 가보니 작은 놀이터 담벼락 구석에 흰 미니 장미가 한창이다. 길가 쪽 가까운 꽃으로 다가가 향내를 삼킨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꽃내음을 먹여서인가, 향기를 덜어낸 미니 장미가 창백하다. 찬 공기를 이겨내며 꽃을 피워낸 모습이 당돌하다. 내가 호흡을 더 들이키면 장미가 스러질까. 돌아오는 길에는 멀찌감치 눈인사로 마무리하련다.
도로 상가와 인접한 길이라 사람이 붐빈다. 편한 옷차림으로 이어폰을 꽂고 혼자 운동하는 사람도 많다. 식당·커피숍·공원 등 연인, 가족이랑 나온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도 제각각이다. 스치는 사람들에게서 친근한 감정을 느낀다. 횡단보도를 건너 바닷가 산책길로 접어든다. 익숙한 바다 냄새가 눈과 귀로 밀려든다. 숨을 고르고 어둑한 바다 수면에 비췬 불빛을 쳐다본다.
돌 틈새 길고양이들이 머물던 장소가 여기쯤이나. 새끼 고양이들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먹이 한 번 줘 본 적 없던 내가 새끼 고양이들의 안부를 궁금해 하다니, 혼자 머쓱해진다. 버스 정류장 맞은편 귀퉁이 공간 호박밭 초록 넝쿨들이 썰렁하다. 잎 끝이 마르거나 이울어 가는 게 성글어 보인다. 초록 잎들이 듬성듬성해 작은 밭뙈기는 휑하다.
바다 물속도 뭔가가 빠진 듯 허전하다. 바닷가 해안 길 아래 수면에서 헤엄치던 숭어 떼가 보이질 않는다. 잠시 어디로 가버린 건지 잔잔한 바닷물만 일렁인다. 숭어 떼의 흔적을 메우려 가로등 불빛이 수면 위로 길게 늘어져 반짝거린다. 계속 뒤바뀌는 해안가 조명에 바다는 금빛, 은빛, 색색의 물비늘로 화려하다. 숭어 떼가 노니는 모습처럼. 아래쪽 계단 몇 미터 떨어진 자리에서 중년 부부가 낚시를 한다. 무엇을 낚는 걸까? 어두운 바다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침묵하는 부부의 모습이 답답하다. 그들은 어떤 어신을 기다리는 걸까.
나는 집에서 소호동 바닷가 동동다리까지 거닐거나 선소를 지나 예울 마루 언덕까지 걸었다. 더워지면서부터 걷기를 중단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줄넘기를 시작했다. 신발장 서랍에서 빈둥대는 줄넘기를 발견한 뒤였다. 머지않아 줄넘기도 며칠간은 쉬어야 했다. 발목에 무리가 왔는지 복숭아뼈 안쪽 인대가 늘어난 탓이다. 증세가 심하진 않지만 얼마간 가볍게 걷는 게 좋을 성싶었다.
걷다 보니 동동다리 입구에 다다른다. 요트장까지 바닷가에 설치한 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리 자체 조명이 화려해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다. 바람에 실린 갯내음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삼삼오오 느린 걸음으로 몰려다닌다. 난 야경을 즐기는 그들 때문에 가끔 멈춰진다. 그 시간이 싫지 않다. 낯선 그들에게 뭔가를 베푼다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저들처럼 관광객이 돼 낯선 곳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난다. 오른쪽으로 통행하라는 푯말이 다리 바닥에 붙었다. 하지만 야경에 취해 움직이다 보면 길이 다 오른쪽이 돼 버린다. 이쪽 오른쪽 사람은 마주 보며 저쪽 오른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무시한 채 딴청을 피우며 걷는다.
돌아오는 길, 흰 미니 장미에 눈길이 닿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길가 바깥쪽으로 핀 장미 송이가 없다. 다른 꽃도 아니고 향기를 맡으며 조금 전에 찜한 꽃이다. 줄기만 휑한 게 누군가 꺾어 버렸다. 그 자리로 되돌아온 길지 않는 사이에. 장미 향만으로도 과분한데 아예 꽃을 꺾어 버린 손길이 야속하다. 그 누군가가 꺾은 꽃에 싫증 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과몰입이려나. 집으로 가는 내내 길가에 버려진 꽃 냄새가 나타날까 봐 두렵다. 소복 입은 장미 귀신아, 내 꽁무니에 따라붙지 마라.
내가 사는 곳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면 소호동으로 넘어가게 된다. 카디건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 도로 갓길로 접어들었을 때다. 몇 분을 걸었을까?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나쳐온 길에서 날아오르는 냄새다. 달콤한 향에 허기가 진다. 뒤돌아 가보니 작은 놀이터 담벼락 구석에 흰 미니 장미가 한창이다. 길가 쪽 가까운 꽃으로 다가가 향내를 삼킨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꽃내음을 먹여서인가, 향기를 덜어낸 미니 장미가 창백하다. 찬 공기를 이겨내며 꽃을 피워낸 모습이 당돌하다. 내가 호흡을 더 들이키면 장미가 스러질까. 돌아오는 길에는 멀찌감치 눈인사로 마무리하련다.
나는 집에서 소호동 바닷가 동동다리까지 거닐거나 선소를 지나 예울 마루 언덕까지 걸었다. 더워지면서부터 걷기를 중단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줄넘기를 시작했다. 신발장 서랍에서 빈둥대는 줄넘기를 발견한 뒤였다. 머지않아 줄넘기도 며칠간은 쉬어야 했다. 발목에 무리가 왔는지 복숭아뼈 안쪽 인대가 늘어난 탓이다. 증세가 심하진 않지만 얼마간 가볍게 걷는 게 좋을 성싶었다.
걷다 보니 동동다리 입구에 다다른다. 요트장까지 바닷가에 설치한 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리 자체 조명이 화려해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다. 바람에 실린 갯내음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삼삼오오 느린 걸음으로 몰려다닌다. 난 야경을 즐기는 그들 때문에 가끔 멈춰진다. 그 시간이 싫지 않다. 낯선 그들에게 뭔가를 베푼다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저들처럼 관광객이 돼 낯선 곳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난다. 오른쪽으로 통행하라는 푯말이 다리 바닥에 붙었다. 하지만 야경에 취해 움직이다 보면 길이 다 오른쪽이 돼 버린다. 이쪽 오른쪽 사람은 마주 보며 저쪽 오른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무시한 채 딴청을 피우며 걷는다.
돌아오는 길, 흰 미니 장미에 눈길이 닿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길가 바깥쪽으로 핀 장미 송이가 없다. 다른 꽃도 아니고 향기를 맡으며 조금 전에 찜한 꽃이다. 줄기만 휑한 게 누군가 꺾어 버렸다. 그 자리로 되돌아온 길지 않는 사이에. 장미 향만으로도 과분한데 아예 꽃을 꺾어 버린 손길이 야속하다. 그 누군가가 꺾은 꽃에 싫증 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과몰입이려나. 집으로 가는 내내 길가에 버려진 꽃 냄새가 나타날까 봐 두렵다. 소복 입은 장미 귀신아, 내 꽁무니에 따라붙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