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 양성관 동강대 교수
2023년 01월 13일(금) 00:30 가가
지난해 말 눈이 오는 퇴근길 운전 중에 앞을 잘 보지 못해서 도로의 중앙 경계석을 들이받은 적이 있다.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여 공업사로 견인 조치를 한 후, 차 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 놓고 도로의 길가에 서 있었다. 진눈깨비는 내리고 영하의 온도에서 택시 잡기는 어려워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누구에게 전화해서 집에 좀 데려다 주라고 할까 생각하다가, 사고 지점과 가까운 곳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했더니 금방 도착하여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곧이어 그의 아내까지 집에 와서 자동차 사고로 놀란 나를 위로해 주며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얼마나 놀랐느냐? 내일 꼭 병원에 가 봐라”며 사고로 놀란 나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것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지난해 세모에는 우리나라가 여느 해보다도 국내외적으로 매우 힘든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으로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서로 정쟁만 일삼은 자격 없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밑바닥을 보았다. 경제적으로는 코로나19가 3년째 지속되어 소상인과 제조업 등 서민 경제의 급락과 눈만 뜨면 오르는 시장 물가로 서민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사회적으로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애끓는 부르짖음에 등을 돌리는 정부의 태도에 온 국민이 분노하였다. 여기에 북한의 무인기가 여섯 시간 동안 우리 영공을 활보하여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못 한 무능한 정부와 군을 보며 어이없이 한 해를 접었다.
무엇이 이렇게 대한민국을 힘들게 할까? 왜 이렇게 서로가 불신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우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은 상대방과 더불어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는 함께 슬퍼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감’이 없고 나만 잘 살고자 하는 욕심이 대한민국을 무관심과 갈등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해 12월 16일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가 열렸다.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유족들은 서러운 눈물만 흘렸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힘든 것은 정부에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추모제를 치르고 있는 반대편에서는 추모 행사를 반대하는 시위로 유족들이 실신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유족들의 항의로 30초 만에 발길을 돌리는 현실 역시, 유족과 정부 간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이 100채, 1000채의 주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고, 이러한 사람들이 잘 살도록 방치하고 있는 나라 또한 우리나라이다. 보증금 600억 원이 넘는 주택 1139채를 소유한 사람의 사망 후에야 우리나라 다주택자와 그들의 전세 사기 행각이 밝혀졌다. 100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면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사람들의 사고가 3630건에 7584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집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수백, 수천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공감하지 못하는 마음 아픈 현실은 학교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중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조사에 나서자, 해당 학생 가족은 교사가 먼저 폭행했다고 맞대응에 나섰다. 초등학교에서도 고학년 학생이 여교사를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폭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랑과 존경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공감’의 상실로 빚어지는 결과이기에 더욱 씁쓸하다.
자신의 지역구 예산 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에 압력을 넣는 국회의원, 꽃다운 젊은이 158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 관료, 법에 따라 소신과 정의에 입각한 재판보다는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법조인 등 상대방에 대한 ‘공감’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한민국 국민의 눈과 귀는 열려 있다. 2024년 4월 치러질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이 무섭다’라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현재 곁에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과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공감’이야말로 이 시대를 지탱시켜주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16일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가 열렸다.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유족들은 서러운 눈물만 흘렸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힘든 것은 정부에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추모제를 치르고 있는 반대편에서는 추모 행사를 반대하는 시위로 유족들이 실신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유족들의 항의로 30초 만에 발길을 돌리는 현실 역시, 유족과 정부 간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이 100채, 1000채의 주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고, 이러한 사람들이 잘 살도록 방치하고 있는 나라 또한 우리나라이다. 보증금 600억 원이 넘는 주택 1139채를 소유한 사람의 사망 후에야 우리나라 다주택자와 그들의 전세 사기 행각이 밝혀졌다. 100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면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사람들의 사고가 3630건에 7584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집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수백, 수천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공감하지 못하는 마음 아픈 현실은 학교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중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조사에 나서자, 해당 학생 가족은 교사가 먼저 폭행했다고 맞대응에 나섰다. 초등학교에서도 고학년 학생이 여교사를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폭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랑과 존경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공감’의 상실로 빚어지는 결과이기에 더욱 씁쓸하다.
자신의 지역구 예산 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에 압력을 넣는 국회의원, 꽃다운 젊은이 158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 관료, 법에 따라 소신과 정의에 입각한 재판보다는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법조인 등 상대방에 대한 ‘공감’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한민국 국민의 눈과 귀는 열려 있다. 2024년 4월 치러질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이 무섭다’라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현재 곁에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과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공감’이야말로 이 시대를 지탱시켜주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