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평행선- 이 중 섭 소설가
2023년 01월 04일(수) 00:00 가가
매년 사월 첫째 토요일은 조상의 제례 의식을 치르는 날이다. 전날부터 고향을 떠나 사는 후손들이 마을로 모여든다. 언덕배기에 자리한 납골당에 삼백여 조상을 모신다. 제례 날은 사월인데도 바람이 세다. 올해도 어김없이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제례 중에 어릴 적 친구 영훈이 눈에 띄었다. 그는 지금까지 한 해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영훈을 생각하면 멀리 바닷가 마을로 이사한 기억과 면 소재지로 되돌아왔던 기억이 뒤섞였다. 그의 집에는 폐지와 고철 그리고 장난감들이 쌓여 있어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그는 나이가 든 후에도 꿈속에 나타나 나를 당혹스럽게 하곤 했다.
동사무소에서 민원 업무를 보고 있었다. 영훈이 오더니 냅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잉크병을 들고 튀었다. 뚜껑이 열린 채였다. 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를 무단 횡단해 반대편으로 도망갔다. 뜨거운 아스팔트 길 맞은편에서 그는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나는 이쪽에서 그를 쫓아갔다. 둘 사이에 굵은 직선이 죽 뻗어 있었다. 길은 끝없는 평행선이었다. 꿈속인 줄 알면서도 잉크가 쏟아질까 조마조마했다. 영훈의 얼굴은 빨갰다. 더위 때문인지 화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에게 목이 터지라 외쳤다.
“왜? 이유가 뭐야?”
나는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는 되레 빽, 소리를 질렀다. 치가 떨린다는 듯 몸을 부들거렸다. 아무리 곱씹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떤 것이, 나도 모르는 무엇이, 그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직접 물어보고 싶은데 다리가 풀려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도 잉크가 엎질러질까 계속 걱정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욕을 하며 앞으로 달렸다. 모든 일에는 분명 이유가 존재했다. 확실히 내가 잘못한 것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알 수 없으니 골머리가 아팠다.
심지어 영훈의 어머니도 나를 힘들게 했다. 마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곁으로 쓱, 다가왔다.
“우리 달걀 왜 가져갔어?”
조용하고 싸늘했다. 멍한 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눈을 부라리며 내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아들이 범인으로 나를 지목했다며 윽박질렀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만날 때마다 싸늘하게 눈을 부라렸다. 함께 놀던 아이들이 점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치부를 들킨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라고 강하게 말했지만, 이제 아이들도 의심하며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영훈의 어머니는 당연히 꿈속에도 나타났다. 길을 가로막고 입을 꼭 다문 채 두 손을 내밀며 달려들었다.
“달걀, 달걀, 달걀걀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마음이 점점 혼란스러웠다. 마침내 진짜로 내가 훔치지 않았을까, 무의식중에 몸이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주위 아이들도 모두 내가 훔쳤다고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이 일어났다. 이제 나 자신을 내가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납골당 제례 의식을 마친 후 점심시간이 되었다. 옆에 앉은 영훈에게 조용히 물었다.
“근데 어머니는 왜 안 오셨어?”
그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몰랐어? 어머니는 작년 가을에 다른 세상으로 가셨어.”
납골당 앞마당은 벽이 있는데도 여전히 바람이 세찼다. 제례 의식을 마친 후라 다들 배가 고팠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정신없이 바빴다. 나도 허겁지겁 밥을 뜨고 앞에 놓인 술을 들이켰다. 식사하는 영훈의 얼굴에도 세월의 낙서처럼 주름이 가로로 그어져 있었다.
바쁘다며 일어서는 그를 따라나섰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 것을 해결해야 했다.
“어렸을 때 자네 어머니가 왜 그랬는지 알아?”
그는 잠깐 어리둥절했다. 금방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고인인 우리 어머니가 거짓말할 사람이 아냐. 자네는 아직도 어릴 때와 변한 것이 없군.”
그는 말을 마치자 급히 자리를 떴다. 나는 엉거주춤한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결국 문제는 나 자신이란 말인가? 납골당 언덕배기를 가르는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고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민원 업무를 보고 있었다. 영훈이 오더니 냅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잉크병을 들고 튀었다. 뚜껑이 열린 채였다. 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를 무단 횡단해 반대편으로 도망갔다. 뜨거운 아스팔트 길 맞은편에서 그는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나는 이쪽에서 그를 쫓아갔다. 둘 사이에 굵은 직선이 죽 뻗어 있었다. 길은 끝없는 평행선이었다. 꿈속인 줄 알면서도 잉크가 쏟아질까 조마조마했다. 영훈의 얼굴은 빨갰다. 더위 때문인지 화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에게 목이 터지라 외쳤다.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는 되레 빽, 소리를 질렀다. 치가 떨린다는 듯 몸을 부들거렸다. 아무리 곱씹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떤 것이, 나도 모르는 무엇이, 그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직접 물어보고 싶은데 다리가 풀려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도 잉크가 엎질러질까 계속 걱정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욕을 하며 앞으로 달렸다. 모든 일에는 분명 이유가 존재했다. 확실히 내가 잘못한 것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알 수 없으니 골머리가 아팠다.
심지어 영훈의 어머니도 나를 힘들게 했다. 마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곁으로 쓱, 다가왔다.
“우리 달걀 왜 가져갔어?”
조용하고 싸늘했다. 멍한 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눈을 부라리며 내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아들이 범인으로 나를 지목했다며 윽박질렀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만날 때마다 싸늘하게 눈을 부라렸다. 함께 놀던 아이들이 점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치부를 들킨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라고 강하게 말했지만, 이제 아이들도 의심하며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영훈의 어머니는 당연히 꿈속에도 나타났다. 길을 가로막고 입을 꼭 다문 채 두 손을 내밀며 달려들었다.
“달걀, 달걀, 달걀걀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마음이 점점 혼란스러웠다. 마침내 진짜로 내가 훔치지 않았을까, 무의식중에 몸이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주위 아이들도 모두 내가 훔쳤다고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이 일어났다. 이제 나 자신을 내가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납골당 제례 의식을 마친 후 점심시간이 되었다. 옆에 앉은 영훈에게 조용히 물었다.
“근데 어머니는 왜 안 오셨어?”
그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몰랐어? 어머니는 작년 가을에 다른 세상으로 가셨어.”
납골당 앞마당은 벽이 있는데도 여전히 바람이 세찼다. 제례 의식을 마친 후라 다들 배가 고팠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정신없이 바빴다. 나도 허겁지겁 밥을 뜨고 앞에 놓인 술을 들이켰다. 식사하는 영훈의 얼굴에도 세월의 낙서처럼 주름이 가로로 그어져 있었다.
바쁘다며 일어서는 그를 따라나섰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 것을 해결해야 했다.
“어렸을 때 자네 어머니가 왜 그랬는지 알아?”
그는 잠깐 어리둥절했다. 금방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고인인 우리 어머니가 거짓말할 사람이 아냐. 자네는 아직도 어릴 때와 변한 것이 없군.”
그는 말을 마치자 급히 자리를 떴다. 나는 엉거주춤한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결국 문제는 나 자신이란 말인가? 납골당 언덕배기를 가르는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