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남도오디세이 美路 목포의 낭만공간 오거리 ‘밀물다방’
2022년 11월 14일(월) 19:45
반세기 예술 감성 흘러들어온 지역예술가들의 아지트
목포 원도심 중심지 ‘오거리’
근대역사문화 집적지
1950년대부터 예술가들 발길 북적
전시·만남의 공간 ‘다방문화’ 탄생
옛 기억 새기는 손님들 감회

지역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목포오거리 옛 ‘밀물다방’ 간판.

목포 오거리 다방을 찾아 떠나는 추억여행. 목포역에서 청소년 문화센터 방향으로 300m 정도 거리에 위치한 ‘밀물다방’은 왕년에 목포에 살았던 이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예술인과 젊은이들의 ‘아지트’로 통한다. 7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밀물다방’은 어떤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을까.



밀물다방에서 첫 전시를 했던 최낙경 화백 전시회. <최선 작가 제공>
◇목포 오거리의 다방문화

‘밀물다방’ 얘기에 앞서 원도심 오거리 이야기가 먼저일 것 같다. 무안동의 중앙거리인 오거리는 목포 원도심의 중심지였다. 근대역사문화의 집적지인 이곳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 전쟁 이후까지 근대 최고 번화가였던 거리이기도 하다.

목포에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근대역사 공간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데 당시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근대 건축물 15채는 등록문화재로 등록하고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목포 오거리는 원도심의 주요공간이자 문화를 연결하는 다섯 개의 길이 있다고 해서 ‘오거리’라고 불리게 됐다.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사는 거주지역의 경계가 되는 곳이었으며, 선창과 목포역, 유달산으로 연결된 길이 이곳 오거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오거리에 일본과 서구식 건물이 들어섰고 금융기관과 병원 등 주요 시설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목포의 중심 상업지구가 되었다.

예향의 도시 목포 오거리는 1950년대부터 문인과 시인, 화가 등 문학인과 예술가들이 모여든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일대에는 다방들이 많았는데 화랑과 미술관이 없어 전시공간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다방이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자 작은 미술관으로 활용되면서 목포만의 독특한 다방문화가 탄생됐다.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드나들어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을 문화공간이었다. <최선 작가 제공>
지금까지도 시민들은 묵다방, 밀물다방, 황실다방, 야자수다방, 초원다방, 오아시스다방, 해태다방, 새마을다방, 봉선화다방, 아담다방 등 오거리 다방들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며 이들 다방 중에는 지금까지 문을 연 곳이 있기도 하다.

“지금이야 목포 오거리가 텅 빈 듯 허전하고 쓸쓸한 느낌이지만 1960~80년대만 해도 이 일대 다방과 주점들은 예술인과 젊은이들로 항상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쳤지요.”

목포에서 살고 있는 50~70대 중장년층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옛 시절의 모습이다.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드나들어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을 문화공간이었다. <최선 작가 제공>
◇예술인들의 아지트 ‘밀물다방’

목포 오거리 적색의 화벽돌이 멋스러운 건물은 옛 ‘밀물다방’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오거리 다방문화를 이끌던 곳 중 하나다. 과거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지고 지금은 다방이 아닌 ‘밀물 카페’가 되었지만 지금도 건물 외벽 중앙에 ‘밀물’이라는 상호명이 적혀있어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내부가 꽤 넓고 벽면 역시 화벽돌이 근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내부 한쪽 벽면에 옛 ‘밀물다방’의 간판 사진과 함께 다방의 스토리를 소개한 액자가 당당하게 걸려 있다.

목포여자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을 지낸 조미영 대표는 밀물다방의 2대 대표이자 ‘밀물’을 지금까지 유지시켜오고 있는 건물주이기도 하다. 조 대표를 통해 밀물다방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밀물다방’이 들어선 건물은 본래 일제강점기 시절 재상이 살았던 집이었다.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조 대표의 시아버지인 고(故) 신화성씨가 건물을 매입하고 온 가족이 모여 살았다.

이후 예향 목포의 문화·예술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있던 시부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일 수 있도록 1층을 개조해 다방을 열었다. 상호명은 ‘밀물다방’이었다.

밀물다방은 이내 예술가들의 토론의 장이자, 다방전시회가 열리는 전시공간의 역할을 해나갔다. 아픈 역사의 잔재, 근대화 발자취의 의미가 아닌 르네상스 당시 피렌체처럼 예술이 꽃필 수 있는 소통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시부의 마음이 새겨진 공간이 되었다.

“‘밀물’이라는 상호는 공모전을 통해 지으셨다고 해요. 바닷물이 육지 안쪽까지 가득 들어오는 밀물처럼 ‘항상 사람이 몰려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죠. 시아버님은 은행에 근무하시기도 했고 또 목포에서 맨 처음으로 양화점을 하신 분이셨어요. 알고 지내는 기관장들도 많으셨지요. 많은 예술인들과 기관장, 시민들이 밀물을 찾아오셨어요.”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오는 중년의 손님들도 많다. 도란도란 모여앉아 과거를 회상하곤 한다. 그들 중에는 예전에 맛봤던 쌍화차를 판매해달라고 요청하는 이들도 있단다. 모든 다방이 그러했듯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가 인기였는데 겨울이면 꼭 그 쌍화차를 판매하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시부에 이어 조 대표가 밀물다방을 운영하다가 한때 상호를 바꿨던 적이 있었는데 단골 고객들의 항의(?)를 많이 받았다. ‘밀물’을 유지해달라는 애정어린 요청이 있었기에 다시 ‘밀물’로 변경했다. 몇 년 전부터 조 대표의 딸 신혜선 씨가 3대 대표를 맡아 카페 운영을 해오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목포를 떠나게 되면서 지난 7월부터 외부인에게 카페를 맡긴 상태다. 운영 조건은 하나였다. “상호명은 바꾸지 마세요!”

적색 화벽돌이 멋스러운 ‘카페 밀물’.
카페 위 2층은 여전히 조 대표가 사용하는 개인공간이다. 틈나는대로 카페에 들러 잊지 않고 찾아주는 지인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조 대표가 추천하는 ‘밀물 카페’ 인기 메뉴는 오로라에이드와 선셋에이드다. 깔라만시 원액에 히비스커스와 버터플라이어(나비꽃)를 블렌딩한 음료다. 바로 마시기 아까울 정도로 색이 곱다. 따뜻하게 마시는 커피도 인기 메뉴다. 디저트는 애플 단호박 케이크와 오리지널 치즈 케이크다. 동명동 케이크 맛집으로 소문난 카페와 함께 개발한 메뉴다.

‘카페 밀물’에서 음료 만큼이나 눈에 띄는 건 빨대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빨대가 아닌 친환경 빨대라는데 쉽게 젖어버리는 종이빨대와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100% 퇴비(compostable)로 사용이 가능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생분해성친환경제품이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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