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2년 06월 10일(금) 02:00
지난 5월의 불교문화 답사는 진주 지역으로 다녀왔다. 진주성 전투는 40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6만의 민간인이 왜군에게 학살당했다.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을 통틀어 가장 잔인하고 의미 없는 전투로 회자되고 있다.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일본의 복수심이 불러일으킨 참극이다. 확인할 길 없지만 열아홉 살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다 한다.

한국전쟁은 70년 전의 일이다. 박완서 선생은 한국전쟁이 나던 해 서울대 국문학과 1학년이었다. 논개와 비슷한 나이였다. 가난하지만 평범했던 대학 신입생의 삶은 전쟁으로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그녀는 죽는 날까지 전쟁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80년 광주 당시 숱하게 많은 시민들이 같은 민족의 손에 죽었다. 벌써 42년 전 일이다. 당시 조선대학교 불교학생회 회장이었던 김동수 학생은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의 총에 죽었다. 이제 그는 열사로 불리우며 사람들의 마음 속에 길이 길이 기억되고 있다.

희한하게도 400년 전 임진왜란과 70년 전의 한국전쟁의 전개 양상이 매우 흡사하다. 왜군은 20일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한 달 만에 함경도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곧 명이 참전하고, 전라도 해안에서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연일 승전보를 울렸으며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전세는 고착되었고 명과 왜군은 지리한 협상을 이어갔다. 한국전쟁의 양상 역시 이와 비슷하다. 초반에 침공한 쪽이 곧 전쟁을 끝낼 것처럼 몰아붙이다가 전세가 고착되고 지리한 협상이 이어지는 이런 모습은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역사는 반복되는 모양이다. 반복되는 역사의 틈바구니 속에서 다행히 나는 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나 지금까지 전쟁과 학살을 경험하지 않고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평화로웠다고 해서 앞으로도 평화로울 것이란 보장은 없다.

전쟁에 비하면 일상은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평화로운 일상 속을 들여다 보면 거기엔 온갖 분노와 슬픔, 두려움, 불안, 권태, 갈망, 질투, 수치심 같은 것들이 지워지지 않는 때처럼 시꺼멓게 쌓여 있다. 가까이에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실상은 전혀 평화롭지 않지만 사실은 이것이 평화의 디테일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의 맛이다.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일상을 바라본다면, 너무나 현실감이 없어서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니 온갖 번뇌에 일희일비하는 것이야말로 평화로운 일상의 참모습이다. 번뇌를 떠난 중생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주성 전투에서 학살당한 6만의 백성들과 자결한 여인들. 한국전쟁 당시 죽은 수백만의 민간인들. 80년 광주에서 학살당한 숱한 시민들. 그리고 여전히 진행중인 전쟁에 희생된 많은 우크라이나의 백성들. 이들은 모두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에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태어났다. 그러니 죽는 것도 응당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 되었건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병들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아니면 늙어서 죽을 권리가 있다. 지금까지 나는 개가 개를 죽이고, 돼지가 돼지를 학살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다. 유감스럽게도 전쟁이든 전쟁이 아니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인류 역사에서 비일비재하게 있어 왔다.

어느새 오월이 가고 유월이 왔다. 오월은 광주의 영령들이 희생당한 달이다. 유월은 삼백만 가까운 희생자가 나온 한국전쟁이 시작된 달이다. 6만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된 2차 진주성 전투 역시 음력 6월에 벌어진 일이다. 광주의 오월은 민주화의 염원을 지금까지 불사르고 있다. 반면 공산군의 총칼에 숱한 양민들이 피 흘린 한국전쟁은 이 땅에 뿌리 깊은 반공의 정서를 심어 놓았다. 우리들의 반일 정서는 아마도 임진왜란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명분으로도 그 어떤 사상이나 가치관 심지어 종교일지라도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학살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비록 번뇌로 점철되었을지라도, 나는 전쟁이 아닌 일상의 어느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최소한 인간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바람만큼 인간적인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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