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평의 메커니즘
2022년 05월 10일(화) 00:45 가가
안 창 완 조선대 생명화학고분자공학과 3년
불공평이란 무엇일까? 보통 ‘사회적 불공평’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회는 항상 불공평과 싸운다. 기득권, 즉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를 입는 사람들 또한 생기니 말이다. 제로섬 게임이 그렇다. 제로섬이란 어떤 시스템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정해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상태를 말한다. 즉 승자 독식의 제로섬에서의 공평이란 있을 수 없다.
불공평이 생기는 메커니즘에는 ‘박탈감’이 있다. 15∼17세기 군주주의가 절정을 달했을 때 평민은 귀족과 생활상의 차이가 극심했음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혁명을 일으켜야겠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오히려 혁명이 일어난 시점은 2차 산업이 도래하며 중산층의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었을 때 발발했다. 이는 중산층이 자신들은 귀족과 크게 다름이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비등한 관계일 때 불공평에 대한 의식이 떠오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불공평을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하지만 복잡한 사회에서 이분론으로 나눌 수 없는 불공평 역시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감정의 불공평이다. 감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과연 공평한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사랑, 혹은 사랑하는 이에게로부터 주거나 받는 사랑 말이다. 흔히 아가페적 사랑을 가장 크고 불공평한 사랑으로 본다. 이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건네는 사랑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을 주는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에서 행복감, 만족감적 측면으로 바라봤을 때도 과연 불공평하다고 볼 수 있는가?
주는 사랑의 기쁨을 생각한다면 사랑을 주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기쁨은 받은 사람의 기쁨만큼이나 크다. 그런 의미에서 유일하게 공평한 것은 사랑의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공평을 외치는 사례가 다양하다. 관계의 공평, 기회의 공평 등 다양한 사례 속에서 동등함을 위해 싸운다. 언제부턴가 공평이란 개념은 무를 썰 듯 딱 자를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뜻하는 공평에는 이제 단 일부분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의식이 담기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공평이라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공평과 평등에 대한 의미를 시각화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공평은 어떠한 조건과 환경이라도 모두가 같은 높이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반면 평등은 조건과 환경을 똑같이 제공하지만 애초부터 서로 다른 위치에 있기에 같은 환경을 제공해도 전부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가 외치는 것은 과연 공평일까. 평등일까.
사회에서 각자의 공평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점점 만연해져 가는 것은 사회가 점점 감성보다는 이성을 추구함에 있다고 본다. ‘내가 더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남들은 이만큼 하는데 나도 그만큼은 해야 해서’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공평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진 사회에서는 숫자로 나누기하듯 모든 개념을 이분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공평은 평등과 달리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알고 감정과 이성을 잘 배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불공평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평을 위한 제도적 개편만을 외쳐서는 안된다. 가장 먼저 ‘감성과 이성이 공존할 수 있는 인식’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공평을 외치는 사례가 다양하다. 관계의 공평, 기회의 공평 등 다양한 사례 속에서 동등함을 위해 싸운다. 언제부턴가 공평이란 개념은 무를 썰 듯 딱 자를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뜻하는 공평에는 이제 단 일부분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의식이 담기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공평이라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공평과 평등에 대한 의미를 시각화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공평은 어떠한 조건과 환경이라도 모두가 같은 높이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반면 평등은 조건과 환경을 똑같이 제공하지만 애초부터 서로 다른 위치에 있기에 같은 환경을 제공해도 전부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가 외치는 것은 과연 공평일까. 평등일까.
사회에서 각자의 공평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점점 만연해져 가는 것은 사회가 점점 감성보다는 이성을 추구함에 있다고 본다. ‘내가 더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남들은 이만큼 하는데 나도 그만큼은 해야 해서’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공평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진 사회에서는 숫자로 나누기하듯 모든 개념을 이분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공평은 평등과 달리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알고 감정과 이성을 잘 배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불공평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평을 위한 제도적 개편만을 외쳐서는 안된다. 가장 먼저 ‘감성과 이성이 공존할 수 있는 인식’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