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려놓고 나를 만나는 시간 한국의 산티아고 ‘섬티아고’ 순례
2022년 04월 20일(수) 15:30
증도면 기점·소악도 등 5곳 12사도 순례길
국내외 작가 미술작품 예배당 이국적 풍경
베드로 집~가롯 유다 집 12㎞ 걸어서 3시간
‘기적의 순례길’ 노두길 물빠짐 확인해야

‘12사도 예배당’과 노두길로 유명한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으로 불린다. 사진은 베드로의 집.

‘1004섬’ 신안군에는 개성있는 섬들이 넘쳐난다. 최근 가장 핫한 곳은 2021년 유엔세계관광기구 선정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에 선정된 안좌면 퍼플섬이다. 하지마 퍼플섬 전에 신안 섬을 전국에 알린 곳은 증도면의 기점·소악도다.

마태오의 집
기점·소악도는 소기점도와 대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다섯 개의 작은 섬이 노두길로 연결돼 있다. 2018년 전남도의 ‘가고싶은 섬’에 지정된 후 취약한 생활기반과 문화관광시설이 확충되면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100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이지만 지난해 5만4000여명이 섬을 찾아 2018년 대비 관광객이 20배 급증할 정도로 인기다.

인기 비결은 12사도 예배당과 노두길이다. 개성있는 예비당을 둘러보면서 노둣길을 걷는 매력에 한국의 산티아고라는 의미에서 ‘섬티아고’ 또는 ‘순례자의 섬’으로 불린다.

12개의 예배당은 국내외 10명의 작가들이 만든 공공미술작품으로 다섯 개의 섬 곳곳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모든 예배당이 10㎡(3평) 규모지만 내부는 혼자 들어가면 딱 알맞을 정도로 크기가 작다. 12사도의 이름을 붙이고 예배당이라 부르지만,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들어가 명상을 하고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필립의 집
첫 번째 예배당인 베드로의 집에서 열두 번째 예배당인 가롯 유다의 집까지는 약 12㎞로 걸어서 3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길은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포장이 돼 있어 걷기에 편하고, 한가로운 농촌의 논길과 밭길, 바다와 갯벌도 두루 만나 풍광도 빼어나다. 게다가 물이 차면 사라졌다 물이 빠지면 다시 나타나는 노두길도 있다. 노두길은 섬사람들이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을 건너기 위해 펄밭에 돌을 던져 채우고 다시 채우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만든 길이다. 바닷물이 들고남에 따라 사라졌다 나타났다 해서 ‘기적의 순례길’로도 통한다. 기점·소악도의 12개 예배당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선 네 개의 노두길과 하나의 바닷길을 건너야 한다. 한번에 순례길 전체를 걷고자 한다면 물이 빠져 노두길을 걸을 수 있는 시간을 잘 알고 가야 한다.

요한의 집
첫 번째 예배당인 ‘베드로의 집’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한다. 희고 파란 작은 예배당 하나가 섬의 분위기를 이렇게 바꿀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12사도 순례길의 시작점이기도 한 베드로의 집에는 ‘건강의 집’이란 이름이 붙었다. 예배당은 눈부시게 맑고 밝다. 예배당 내부 또한 특별한 장식 없이 깨끗하고 간결하다.

예배당마다 별칭이 있는데 야고보의 집은 ‘그리움의 집’, 유다 타대오의 집은 ‘칭찬의 집’으로 불린다. 칭찬의 집은 예배당 내부에 바다를 찍는 창틀이 있어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높다. 강영민 작가가 만든 ‘시몬의 집(사랑의 집)’은 바닷가 가까이에 있다. 모든 공간이 바다로 열려 있어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예배당을 관통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도 일품이다.

마지막 열두 번째 예배당인 ‘가롯 유다의 집(지혜의 집)’은 소악도 끝 딴섬에 있다. 손민아 작가가 만든 예배당으로 붉은 벽돌의 요철과 높게 솟은 첨탑이 매력적이다. 순례길에 있는 12개의 예배당 중 가장 아름답지만, 바닷길을 건너야 한다는 이유로 이곳을 빼먹는 여행자들이 많다.

시몬의 집
기점·소악도로 가는 배는 압해도의 송공항에서 출발한다. 목포에서 압해도까지 압해대교가 놓이면서 기점·소악도로 가는 길이 편해졌다.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는 대기점도 선착장에 내려 베드로의 집에서부터 가롯 유다의 집까지, 번호가 매겨진 순서대로 걷는 게 보통이다. 때론 일정에 따라 소악도 선착장에 내려 순례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오는 여행자들도 있다. 송공항에서 출발한 배는 보통 한 시간 정도면 대기점도 선착장에 닿는다.

올해 상반기 새로운 순례길이 개통되면 오롯이 순례자를 위한 길로 방문자의 발길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장필수 기자 bungy@kwangju.co.kr

/신안=이상선 기자 ssle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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