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를 위한 안식처는 없다-중 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2년 02월 04일(금) 05:00
병원에 갔다. 내 앞에 다섯 명의 대기자가 있었다. 그런데 첫 번째 대기자가 진료실에 들어가서는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종종 있는 일이다. 뚱뚱한 몸집에 두툼한 인조 모피 코트를 입은 앞자리 아줌마가 참을성이 동났는지 옆 선생님은 금방 끝났는데 이 선생님은 왜 이렇게 오래 하냐며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동조자를 구하는 눈빛으로 주변 사람들을 한 사람씩 스캔하면서도 딱히 당신에게 하는 말은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한다. 옆방 진료실은 아예 환자가 없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 앉아 있던 제법 나이 되어 보이는 아줌마가 거든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아웃도어 패션에 얼굴엔 노동의 흔적이 깊이 패어 있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나는 검사 결과만 보면 되는데, 5시면 진료 끝나는데, 여기 빨리 보고 신경외과 가야 되는데… 몹시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왜 이 정도도 못 기다릴까? 나이를 먹어도 아이들이랑 다를 게 없구나 싶었다. 조금의 불편함도 참지 못하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요즘 청년들은 끈기가 없다고 탓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 역시 요즘 젊은이들이랑 다를 게 없다. 그냥 요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끈기가 없다.

끈기가 없다기 보다 자신들의 욕망에 지나치게 충실하다. 요즘 대선으로 연일 언론이 요란하다. 나라가 멀쩡한데 국운이 다했다고 한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제는 승승장구하는데도, 어떤 이들은 나라가 망했다고 난리다. 부동산 광풍은 돈에 미치지 않고는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언론에서 매일 접하는 소위 ‘요즘 사람들’의 적나라한 욕망을 병원 진료실 앞에서 목도한다.

그런데 마음이 급했던 아웃도어 패션 아줌마가 급기야는 자기가 먼저 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줌마들 특유의 혼잣말인데 주변 사람들 다 들으라는 의도를 강하게 담은 말투로 내 이름을 거론한다. 대기자 명단을 보니 내 이름 뒤엔 한 사람 밖에 없다.

‘뭐야? 대꾸를 해야 되나? 기다리기는 매 한가지인데 사정 봐 달라는 건 아니지 않나? 나를 지목하면서 한 말도 아닌데 굳이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갑자기 내가 두 아줌마의 풍성한 대화의 성찬 위에 먹음직한 반찬으로 올라 버렸다. 구경꾼들은 ‘나는 저들과 달라, 나는 저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방어하며, 안 보는 척 열심히 관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그저 혀나 끌끌 차며 구경이나 하고 싶은데 저들은 나를 그냥 두질 않을 심산이다. 몹시 당혹스럽다. 두 아줌마의 ‘이건 당신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 굳이 당신을 지목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신이 새겨 듣고 알아서 대답해 달라’는 은근한 협박이 슬글슬금 부담스럽게 조여 온다.

가만히 있는 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어찌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질 않은 나는 그냥 모른 척 뭉개고 있었다. 내 앞의 환자가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도망치듯 얼른 진료실로 들어갔다. 순간 스스로 멈칫하고 놀랄 정도였으니 압박이 은근 대단했던 모양이다. 통상 환자가 나가고 나면 의사는 처방전을 내린다든지 하는 간단한 일을 본다. 앞의 환자 나가고 다음 환자가 들어가기까지 약간의 공백이 있지만, 그런 공백을 완전히 무시하고 얼른 들어가 버린 것이다.

진료실 밖의 분위기를 알 리 없는 의사는 나를 보더니 한편으로는 반가워하면서도 왜 이렇게 빨리 들어왔냐는 눈치다. 앞의 환자 처방전만 내리면 되니 잠깐 기다리라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의사 옆에 앉은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동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든 이러네 저러네 평가하면서 구경만 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그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항상 주체로써 살아간다. 그 누구의 삶도 대상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본인에게는 본인이 영원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방관자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삶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아주 연약한 유리병 같은 것이다. 그러니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며 멍하니 있다가는 뒤통수 맞고 우왕좌왕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욕망이 날 것 그대로 살아서 펄쩍펄쩍 뛰는 요즘엔 더더욱 구경꾼처럼 살기 힘들다. 방관자를 위한 안식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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