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이 곁으로 마지막 가는 길에 눈은 내리고
2022년 01월 12일(수) 00:05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평생을 민주화에 헌신해 온 배은심 여사가 영면에 들어갔다. 영결식이 열린 어제 광주에는 종일 눈이 내렸다.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 둔 한(恨)이 눈이 되어 내린 것일까.

이날은 배 여사의 여든세 번째 생일이었다. 영정 앞에는 고인을 위한 생일 케이크가 놓였다. 공교롭게도 당신의 생일을 맞아 그동안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아들 곁으로 떠나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한 것이다. 흩날리는 눈 속에서 이 열사의 동생인 훈열 씨 등 유족들은 조용히 흐느꼈다. 이날 ‘민주화운동의 대모’가 모든 걸 내려놓고 아들 한열이 곁으로 향하는 길엔 민주화운동 동지와 유가족 및 시민들이 함께했다.

배 여사는 1987년 반독재 투쟁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이 열사가 숨진 것을 계기로 소외되고 억압 받는 이웃을 위해 살아왔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넘어 평생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투사로 살며 상처를 입고 흔들리는 이들의 곁을 따뜻하게 지켰다. 민주주의로 가는 주요 길목엔 언제나 그가 있었다. 배 여사는 “한열이가 못다 만든 세상을 내가 이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고 했다.

유가협 회장을 맡았던 지난 1998년에는 422일 동안 국회 앞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 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 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났을 때는 직접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았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는 상심에 빠진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특히 배 여사는 쓰러지기 직전인 지난달까지도 국회 앞 민주유공자법 제정 농성장에 들러 1인 시위를 이어갔다고 한다.

오늘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한 발짝씩 온 것’이라는 배 여사의 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배 여사의 영면을 애도하며 부디 하늘에서 편안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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