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중 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1년 12월 10일(금) 01:30 가가
노모는 올해 86세이다. 10여 년 만에 노모를 만나 이틀을 함께 지냈다. 노모의 집 거실엔 팔순 생일날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삼대에 걸친 총 열두 명이 사진 속에 있다. 노모의 팔순 생일날 가족들이 모인 김에 형님이 갑자기 제안해서 찍게 되었단다. 과거의 가족 사진에서 풍기는 근엄함이나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복장도 캐주얼하고 분위기도 화사하고 인테리어도 현대적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화목한 가족이다. 그 당시엔 의도해서 찍은 것도 아니어서, 찍고 나서도 얼마나 볼까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벌써 6년이 지난 지금, 다들 찍어 두길 잘했다고 한다.
티 없이 밝고 화목한 가족사진에 빠진 사람이 한 명 있으니 바로 나다. 나야 말로 제대로 출가외인(出嫁外人)이다. 서울 생활까지 포함하면 거의 40년 가까이 가족을 떠나 홀로 생활했으니 나는 무늬만 가족인 셈이다. 40년 가까이 혼자 살아온 내게 가족사진은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으로나 접하던 것이어서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더구나 남도 아닌 우리 가족이어서 더더욱 비현실적이다.
분명 한 가족인데 가구 수는 아홉 가구다. 기숙사 생활하는 동생네 딸까지 포함하면 열 가구다.
위키 백과사전은 가족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가족(家族)은 대체로 혈연, 혼인, 입양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중략) 많은 사회는 가족의 범위를 법률이나 그 외의 규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16조 3항에 따르면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떤 집단이 가족이 되려면 최소한 두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하나는 넓은 의미에서 법으로 정해진 혈연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의 공유이다. 일상의 공유를 피부에 와닿는 표현으로 하자면 식구(食口)가 될 것이다. 식구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한 상에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혈연은 아니지만 식구인 경우, 흔히 ‘가족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하지만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면 혈연이기는 하나 식구는 아닌 경우, 가족은 가족이긴 한데 가족다운 살가움, 정(情) 같은 것이 많이 부족하다.
2020년 한국 사회의 가구수 조사 결과를 보면 1인 가구가 무려 39.5%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4명은 혼자 산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한국인 10명 중 4명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가족은 있을지 몰라도 혈연과 식구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실질적인 가족은 없는 셈이다.
현대의 가족은 어쩌면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사진으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노모의 집 거실에 걸린 우리 가족의 사진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미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가족과 현실 속의 그것이 일치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핵가족까지 붕괴되어 1인 가구가 대세가 된 현대 사회에서 식구로서의 가족은 실질적인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 현대의 우리는 혈연이자 식구로서 ‘한때’ 일상을 공유했던 사람들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 한번 가족으로 인연이 맺어지면 영원히 가족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현대의 가족은 더 이상 함께 살지는 않지만 ‘우리는 가족’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까지 외연을 확장하였다. 그 결과 가족은 현실의 일상이 아니라 관념과 사진 속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는 그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이전 세대는 산업 발전의 격랑을 겪으며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 뿌리내리고 살았다. 그들은 마음 속에 고향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들이 마음에 품은 고향은 다름 아닌 그들이 떠나온 공동체였다. 이미 고향을 떠난 현대인은 이제 가족을 떠나 나 홀로 살고 있다. 우리는 마음 속에 가족을 품고 나 홀로 혹은 직장 동료들과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시대가 그 무엇보다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다. 왜 소중히 여기는가? 상실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마저 사라지면 현대인은 돌아갈 곳이 없다.
어쩌다 보니 나는 가족사진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그다지 서운하지는 않다. 덕분에 명실상부한 출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집단이 가족이 되려면 최소한 두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하나는 넓은 의미에서 법으로 정해진 혈연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의 공유이다. 일상의 공유를 피부에 와닿는 표현으로 하자면 식구(食口)가 될 것이다. 식구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한 상에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혈연은 아니지만 식구인 경우, 흔히 ‘가족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하지만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면 혈연이기는 하나 식구는 아닌 경우, 가족은 가족이긴 한데 가족다운 살가움, 정(情) 같은 것이 많이 부족하다.
2020년 한국 사회의 가구수 조사 결과를 보면 1인 가구가 무려 39.5%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4명은 혼자 산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한국인 10명 중 4명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가족은 있을지 몰라도 혈연과 식구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실질적인 가족은 없는 셈이다.
현대의 가족은 어쩌면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사진으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노모의 집 거실에 걸린 우리 가족의 사진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미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가족과 현실 속의 그것이 일치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핵가족까지 붕괴되어 1인 가구가 대세가 된 현대 사회에서 식구로서의 가족은 실질적인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 현대의 우리는 혈연이자 식구로서 ‘한때’ 일상을 공유했던 사람들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 한번 가족으로 인연이 맺어지면 영원히 가족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현대의 가족은 더 이상 함께 살지는 않지만 ‘우리는 가족’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까지 외연을 확장하였다. 그 결과 가족은 현실의 일상이 아니라 관념과 사진 속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는 그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이전 세대는 산업 발전의 격랑을 겪으며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 뿌리내리고 살았다. 그들은 마음 속에 고향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들이 마음에 품은 고향은 다름 아닌 그들이 떠나온 공동체였다. 이미 고향을 떠난 현대인은 이제 가족을 떠나 나 홀로 살고 있다. 우리는 마음 속에 가족을 품고 나 홀로 혹은 직장 동료들과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시대가 그 무엇보다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다. 왜 소중히 여기는가? 상실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마저 사라지면 현대인은 돌아갈 곳이 없다.
어쩌다 보니 나는 가족사진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그다지 서운하지는 않다. 덕분에 명실상부한 출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