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식물이 사는 땅마저 사랑하게 되는 일
2021년 11월 25일(목) 02:00 가가
처음 연재 제안 메일을 읽자마자 나는 이 연재를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처럼 주저없이 결단을 내리는 경우는 무척 드문 일이었다. 메일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 남부 지역 곳곳에 자생하는 수많은 특산 식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이 땅의 소중함과 식물 다양성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전라도에 연고가 있거나 이 지역에 대해 특별히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부 지방에서 살아본 일조차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장산에 얼마나 귀한 상사화속 식물이 자생하는지, 거금도의 노각나무 군락이 얼마나 특별한지, 완도 호랑가시나무의 자생지 훼손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느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지역 곳곳의 특별하며 고유한 식생을 줄곧 관찰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지인이기에 오히려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있지 않을까?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줄곧 수도권에서 살아왔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경기 동북부에 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인 국립수목원 역시 집에서 꽤 가까웠다. 국립수목원은 우리나라에서 식물세밀화가(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를 채용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내가 저 먼 지역에서 살았다면 쉬이 수목원에 들어가 식물세밀화를 그릴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늘 생각한다.
우리 사무실에는 전국 각지에서 학위를 마친 후 실무를 익히러 온 연구자들이 있었다. 충북 청주, 대전, 경북 안동, 강원도 화천, 전남 순천, 부산 그리고 제주도가 고향인 동료들이었다. 지방에는 일할 수 있는 식물 연구기관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동료들은 광릉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수목원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평일에도 퇴근 시간을 넘기고 일을 했다. 주말 출근도 비일비재했다.
언젠가 옆자리 동료에게 왜 주말에도 나오는지 물었다. 그는 혼자 살기 때문에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다고 했다. 고향을 떠나 직장 근처에서 자취를 한다는 것은 ‘직장 생활이 전부인 삶’을 살게 되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제주도가 고향인 동료는 제주도에 식물연구기관이 생기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전라도 순천이 고향인 동료는 고향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남부 지방 연구기관들에서 채용 공고가 나기를 기다렸다. 혹시 공고가 나기라도 하면 매번 원서를 내곤 했다.
너무 많은 것이 수도권에 편향되어 있다. 식물 연구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각 지역들에 식물 연구기관이 없을 뿐 연구 대상인 식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식물은 다양하게 분포한다.
한반도에는 4800여 종의 관속식물이 자생한다. 이 중 남한에는 3300여 종이 분포하며 전라 지역을 포함하는 서남부 지역에만 1300여 종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 식물 320여 종 가운데 55종 역시 전라 지역에 분포한다. 특히 전남의 흑산도, 홍도, 가거도, 거문도, 완도, 조도, 진도 등과 전북의 내장산, 덕유산, 변산, 지리산 등은 학술적·자원적 가치가 무척 높다.
전국의 식물 연구자들이 광릉의 국립수목원으로 모인 것은 9년 전 일이다. 그 후 강원도 양구에 국립 DMZ자생수목원, 경상북도 봉화에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세종시에 국립 세종수목원이 새로이 조성되었다.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가 고향인 연구자들의 선택지 하나가 더 늘어난 것이다. 전북 김제시에도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국립 새만금수목원이 한창 조성 중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지역 곳곳에 더 많은 식물원과 수목원이 조성되고, 지역에 특성화된 식물 전문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민속 식물의 중요도와도 비례한다.
학회나 모임에서 연구자들끼리 자기소개를 할 때면 이런 대화를 하곤 한다. “저는 충북 진천에서 왔어요.” “오, 미선나무 자생지가 고향이네요. 참 귀한 곳을 고향으로 두셨군요.” 명절이 끝나고 고향을 다녀온 동료에게는 “거기 구상나무 군락 잘 있어요?” 묻는다. 식물을 공부하면서 나는 식물 한 종 한 종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는 장소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이들 모두 식물을 통해 우리가 사는 지역과 땅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고규홍의 나무생각’이 연재를 마침에 따라 이소영 식물세밀화가가 ‘우리 지역, 우리 식물’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이 작가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원예학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산림청 국립수목원에서 식물세밀화를 그렸습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로 ‘식물과 나’, ‘식물 산책’, ‘세밀화집, 허브’ 등이 있습니다.
언젠가 옆자리 동료에게 왜 주말에도 나오는지 물었다. 그는 혼자 살기 때문에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다고 했다. 고향을 떠나 직장 근처에서 자취를 한다는 것은 ‘직장 생활이 전부인 삶’을 살게 되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제주도가 고향인 동료는 제주도에 식물연구기관이 생기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전라도 순천이 고향인 동료는 고향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남부 지방 연구기관들에서 채용 공고가 나기를 기다렸다. 혹시 공고가 나기라도 하면 매번 원서를 내곤 했다.
너무 많은 것이 수도권에 편향되어 있다. 식물 연구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각 지역들에 식물 연구기관이 없을 뿐 연구 대상인 식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식물은 다양하게 분포한다.
한반도에는 4800여 종의 관속식물이 자생한다. 이 중 남한에는 3300여 종이 분포하며 전라 지역을 포함하는 서남부 지역에만 1300여 종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 식물 320여 종 가운데 55종 역시 전라 지역에 분포한다. 특히 전남의 흑산도, 홍도, 가거도, 거문도, 완도, 조도, 진도 등과 전북의 내장산, 덕유산, 변산, 지리산 등은 학술적·자원적 가치가 무척 높다.
전국의 식물 연구자들이 광릉의 국립수목원으로 모인 것은 9년 전 일이다. 그 후 강원도 양구에 국립 DMZ자생수목원, 경상북도 봉화에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세종시에 국립 세종수목원이 새로이 조성되었다.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가 고향인 연구자들의 선택지 하나가 더 늘어난 것이다. 전북 김제시에도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국립 새만금수목원이 한창 조성 중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지역 곳곳에 더 많은 식물원과 수목원이 조성되고, 지역에 특성화된 식물 전문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민속 식물의 중요도와도 비례한다.
학회나 모임에서 연구자들끼리 자기소개를 할 때면 이런 대화를 하곤 한다. “저는 충북 진천에서 왔어요.” “오, 미선나무 자생지가 고향이네요. 참 귀한 곳을 고향으로 두셨군요.” 명절이 끝나고 고향을 다녀온 동료에게는 “거기 구상나무 군락 잘 있어요?” 묻는다. 식물을 공부하면서 나는 식물 한 종 한 종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는 장소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이들 모두 식물을 통해 우리가 사는 지역과 땅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고규홍의 나무생각’이 연재를 마침에 따라 이소영 식물세밀화가가 ‘우리 지역, 우리 식물’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이 작가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원예학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산림청 국립수목원에서 식물세밀화를 그렸습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로 ‘식물과 나’, ‘식물 산책’, ‘세밀화집, 허브’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