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2021년 11월 22일(월) 02:00 가가
송광사 승보전에는 다양한 벽화가 있다. ‘여석부낭’(如惜浮囊)이라는 벽화도 그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타고 가던 배가 난파돼 스님 다섯 명이 가까스로 ‘포낭’(包囊)에 목숨을 부지한다. 포낭은 가죽에 바람을 넣은 것으로 오늘날의 구명보트와 같다. 이때 사천왕에 딸린 여덟 귀신 가운데 하나인 나찰(羅刹)이 나타나 포낭을 달라고 한다. 스님들이 완강하게 거부하자 나찰은 절반 아니 일부만이라도 떼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스님들은 조금의 가죽도 줄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틴다.
‘여석부낭’은 계율과 규범의 중요성을 강조한 설화다. 만약 가죽 일부라도 나찰에게 떼 주면 포낭은 바다에 가라앉고 스님들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수도자는 규범과 계율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단 수도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터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이목을 끄는 벽화가 또다시 등장했다. 국민의 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관련된 네 컷짜리 삽화다. 윤 후보의 장모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과 손바닥의 ‘왕’(王) 자, ‘개 사과’, 전두환 씨 얼굴 등이 담겼다. 얼마 후 벽화는 판자로 가려졌다. 이에 그림을 그린 작가는 판자에 ‘세상이 예술을 죽였다’라는 항의 문구를 남겼다.
인류는 구석기시대부터 다양한 벽화를 그려 왔다. 세계 각지 동굴벽화를 비롯해 이집트 피라미드나 고구려 고분벽화 등이 그것이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그림들이 그려졌다. 대공황 시대 실업자 구제를 위한 미국의 공공 벽화 운동, 80년 이후 성행했던 우리나라 벽화 등은 모두 그러한 시대의 산물이다.
앞서 언급한 벽화 ‘여석부낭’은 법과 원칙이 공동체 근간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의 주변은 어떠해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많은 의혹이 벽화라는 형식으로 그려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정치적 논란을 경계해서 벽화를 판자로 가린 건물주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다만 벽화(壁畵)가 공공성 의미를 억압하는 ‘벽화’(壁話)로의 변질이 아닌, 공론의 장을 구현하는 ‘담화’(談話)의 단초가 됐으면 한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타고 가던 배가 난파돼 스님 다섯 명이 가까스로 ‘포낭’(包囊)에 목숨을 부지한다. 포낭은 가죽에 바람을 넣은 것으로 오늘날의 구명보트와 같다. 이때 사천왕에 딸린 여덟 귀신 가운데 하나인 나찰(羅刹)이 나타나 포낭을 달라고 한다. 스님들이 완강하게 거부하자 나찰은 절반 아니 일부만이라도 떼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스님들은 조금의 가죽도 줄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틴다.
앞서 언급한 벽화 ‘여석부낭’은 법과 원칙이 공동체 근간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의 주변은 어떠해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많은 의혹이 벽화라는 형식으로 그려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정치적 논란을 경계해서 벽화를 판자로 가린 건물주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다만 벽화(壁畵)가 공공성 의미를 억압하는 ‘벽화’(壁話)로의 변질이 아닌, 공론의 장을 구현하는 ‘담화’(談話)의 단초가 됐으면 한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