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점자의 날
2021년 11월 04일(목) 03:00
몇 달 전 우편으로 배달된 서양화가 양경모의 ‘하늘 빛 구름’ 도록을 보니 조금 특이한 데가 있었다. 낯선 경험이었는데, 글과 작품만 실려 있는 여느 작가의 도록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글자’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울퉁불퉁 만져지는 점자였다. 촉각을 활용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도록 튀어 나온 점을 일정한 방식으로 조합한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통로다.

광주장애인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양 작가는 지난 2000년부터 고도근시에 따른 망막박리로 사물이 구부러져 보이는 굴절현상과 시야가 부분적으로 지워져 보이는 장애를 겪고 있다. 물론 작품 활동이 녹록할 리 없지만 그는 ‘눈’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을 담아 바라본 풍경들을 화폭에 담으며 꾸준히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도록의 ‘점자’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손가락으로 글씨를 짚으며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2019년 기준으로 전국의 시각장애인은 25만 3000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점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데, 다행히 최근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어 반갑다. 지난 9월부터 ‘오뚜기’가 식품업계 최초로 점자를 표기한 컵라면을 선보였다. 또 제품 오남용 등을 방지하기 위해 의약품·의약외품 용기·포장 등에도 점자 등 표시 의무가 법제화돼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오늘(11월4일)은 ‘한글 점자의 날’이다. 송암 박두성 선생과 제자들이 현재 쓰고 있는 한글 점자의 원형인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만들어 반포한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한 날이다. 이 날은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점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됐다. ‘훈맹정음’은 1829년 프랑스파리 맹학교 교사였던 브라이유가 고안해 낸 ‘6점형 점자’를 이용해 한글을 점자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침 ‘점자의 날’을 맞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손끝으로 읽는 세상’(4일부터 6일까지)이라는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점자 명함 만들기, 점자를 읽고 배우는 강좌 등으로 구성된 이 행사를 통해 점자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좋겠다.

/김미은 문화부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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