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최애는 누구인가 -우사미 린 ‘최애, 타오르다’
2021년 11월 04일(목) 02:30
당신의 ‘최애’는 누구인가? 최애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긴 신조어로,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을 뜻한다. 주로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멤버 중 하나를 최애로 꼽는 경우가 많다. 가령 인원이 13명인 보이 그룹을 좋아한다면, 13명 모두를 균질하게 좋아하는 게 아닌 그중 한 명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다. CD를 몇 장씩 구입하고 콘서트 티켓을 반복해 사는 것은 물론이요, 관련 상품을 구매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최애의 SNS와 과거 사진이나 개인 방송을 탐닉한다.

더 나아가 최애의 표정과 말투를 분석하고 그와 관계된 모든 것들을 탐구한다. 이를 흔히 ‘덕질’이라고 한다. 대포처럼 생긴 카메라를 챙겨 직접 사진을 찍거나, 남들이 그렇게 찍은 사진을 구입한다. 이를 가리켜 ‘사생팬’이라고도 한다. 심지어 일부는 사생활의 영역까지 쫓아다니며 아티스트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는 일은 대체로 즐겁고 기꺼운 행위다. 최애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음악과 무대를 통해 일상을 견딜 힘을 얻는다. 주변을 돌아보라. ‘BTS’로 인해 더 좋은 미래를 꿈꾸는 ‘아미’를, ‘아이유’ 덕분에 시간의 바깥을 상상하는 ‘유애나’를. ‘최애를 덕질’하는 소소한 몇 시간이 주는 위로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특히 근래 케이팝의 영향력 아래 케이팝의 최애는 세계의 최애가 되었다.

누군가의 최애가 되어 버린 스타들의 사회적 책임과 행동의 무게감이 더욱 커졌음은 물론이다. SNS의 발달로 최애와 팬의 거리가 가까워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그 가까운 거리에 최애에 몰입고 있는 누군가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덕질에 나이는 무관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10대 청소년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자 수십 만 부가 팔린 일본의 베스트셀러 ‘최애, 타오르다’에는 최애를 덕질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지금이야 케이팝의 위상에 따라올 수 없는 현실이지만, 일본은 아이돌 산업의 종주국 격이었다. 그룹 내의 인기투표, CD 안에 추첨권을 동봉하여 대량 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 악수회나 하이파이브 등의 근거리 팬 미팅 등이 모두 일본에서 먼저 자리 잡았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중의 환호를 받고 대규모 콘서트를 여는 아이돌도 있지만, 지역에서 조그맣게 활동하는 ‘지하 아이돌’도 활성화되어 있다. 여러 방식으로 최애를 꼽아 힘껏 덕질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셈이다.

주인공 ‘아카리’의 최애는 혼성 아이돌 그룹 ‘마자마좌’의 멤버 ‘우에노 마사키’다. 어릴 적 아역으로 활동하던 그를 우연히 접한 아카리는 어느새 아이돌이 된 마사키에게 완전히 빠져 버린다. 앞서 말한 덕질에서 사생팬의 요건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갖춘다. 마사키를 응원하기 위해 힘든 아르바이트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스케줄은 마사키의 활동이 기준이 되어 바뀌거나 고정된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뉴스가 들려온다. 마사키가 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소식이다. 아카리는 그런 소식에 흔들림 없이 마사키를 응원하고 지지한다. 평소처럼 블로그에 마사키에 대한 글도 정성스레 올린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삶이 엉망이 되는 건 마사키가 아닌 아카리다.

아카리는 실상 방치되었다. 불안정한 어머니와 감정 기복이 심한 언니 사이에서 10대의 불안과 방황을 최애에게 투영하고 있던 것이다.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아카리는 취업 준비를 이유로 홀로 지내다 마사키의 은퇴 소식을 듣는다.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집중하던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에서. 아카리는 자신에게 이족보행(二足步行)은 어울리지 않다 느낀다. 당분간 기어 다니는 자세로 살아야겠다 마음먹는다.

최애는 말 그대로 다 타올라 버렸다. 타서 재만 남았다. 하지만 그의 실체는 여전히 남아서 보란 듯이 약혼반지를 끼고 기자회견을 한다. 이미지로만 존재하던 최애가 실재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재가 되어 버린 건 최애를 덕질하던 아카리였다. 아카리는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할 듯하다. 당분간 잠행을 이어 나가겠지만, 이제는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에게 과도하게 의탁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을까? 아카리가 다시 두 발로 서는 날, 비로소 알 수 있으리라. 당신의 최애는 누구인가. 최애라는 이름의 왜곡된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스스로의 존재를 의탁하고 있진 않은가? 그게 가수든 배우든 혹은 정치인이든 그 누가 됐든, 지금은 그러한 진지한 질문이 필요할 때일지도 모르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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