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선교사를 만난다면-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1년 10월 08일(금) 00:00 가가
세계에 통용되는 언어의 수는 과거 팔천 개에서 만 개 정도로 알려졌는데 가장 최근 발표된 자료인 ‘에트놀로그, 세계의 언어들’(2009)에 따르면 육천구백여 개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그리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로 약 300개의 언어이며, 그 뒤를 이어 ‘피노키오의 모험’ 260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74개 언어 등의 순이다. 그런데 이 통계에 들지 않는 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책이다. 부동의 1위라는 것에 논란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통계에는 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몇 개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을까. 성경 전체 또는 일부를 번역한 것을 다 합하면 약 이천오백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져 있다고 한다. 이 또한 2008년도 통계이니 현재는 더 늘어났으리라 여겨진다.
일제 강점기 기독교의 큰 역할이 있었는데 신사 참배 반대 운동과 한글 교육 및 보급이었다. 신앙을 지키는 것과 선교를 위한 목적이었다고 백 번 양보하더라도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과 언어를 지키는 것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고, 독립을 앞당기는 일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된다고 본다. 당장에 나의 아버지가 독립유공자 후손이 된 것도 증조부가 신앙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 신사 참배 반대 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 한글의 보존, 교육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한 점도 알아 주었으면 한다.
헐버트 선교사는 1891년 왕실의 초청을 받고 교사로 와서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만들고 ‘가운뎃점 찍기’ 등 맞춤법을 연구했으며, 1893년에는 배제학당에 국문연구소를 설립해서 주시경 등 한글학자들을 배출했다. 1894년 선교사들에게 의존하던 고종은 법률과 칙령을 국문을 본으로 삼고 한문을 혼용케 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고, 1896년 기독교도들에 의해 순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1910년대에 한글의 문법체계를 주시경 선생 등이 정리하면서 한글이란 명칭이 확정되었고, 1937년에는 지리산 노고단 선교사 수양관에 모인 선교사들의 논의를 통해 예례미야서를 제외한 구약성경의 한글 번역본이 결정되었다. 성경의 번역 과정에서 한글의 단어와 문법 등이 정리가 되었던 것이기에 한글의 역사와 성경 번역의 역사는 떼어놓을 수 없다. 교회가 교회의 목적을 위해 한 활동이 국가적으로 큰 유익이 된 사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 1920년대 사설에 우리나라 문맹률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글이 있었다. 문맹률이 9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하며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조선국세 조사보고’에 따르면 80% 달한다고 나타나 있다. 다소 올라간 이유가 한글 보급이라기 보다는 일본어 교육에 의한 상승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자칫 한글이 소실되고 일본어가 우리의 글이 될 뻔한 절체절명의 때에 꾸준히 한글이 보급되고 교육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들과 신자들에게 보급된 한글 번역 성경이 큰 힘이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1935년 생으로 소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셨다. 그렇기에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다. 하지만 성경책 만큼은 어릴 때부터 줄줄줄 잘 읽으셨다고 하신다.
세종대왕께서 가장 기뻐할 사람이라면 함께 한글을 창제한 사람들일 것이고 또한 일제 강점기 한글을 지키고 보급한 선교사들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유로 세종대왕이 선교사를 만난다면 기뻐하며 감사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천 냥 빚이 생긴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 실수를 해서 엄청난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글 창제 당시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천대를 받았던 한글이 성경으로 번역되어 널리 보급되고 읽혀졌을 뿐만 아니라 성스러운 책으로 귀히 여김을 받으니 그 글자 또한 귀히 존중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이러한 한글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누가 예견했겠는가? 이러한 시대에 걸맞게 은어나 비속어보다는 아름다운 한글이 더 널리 보급되고 천국의 언어를 담아 널리 널리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1920년대 사설에 우리나라 문맹률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글이 있었다. 문맹률이 9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하며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조선국세 조사보고’에 따르면 80% 달한다고 나타나 있다. 다소 올라간 이유가 한글 보급이라기 보다는 일본어 교육에 의한 상승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자칫 한글이 소실되고 일본어가 우리의 글이 될 뻔한 절체절명의 때에 꾸준히 한글이 보급되고 교육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들과 신자들에게 보급된 한글 번역 성경이 큰 힘이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1935년 생으로 소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셨다. 그렇기에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다. 하지만 성경책 만큼은 어릴 때부터 줄줄줄 잘 읽으셨다고 하신다.
세종대왕께서 가장 기뻐할 사람이라면 함께 한글을 창제한 사람들일 것이고 또한 일제 강점기 한글을 지키고 보급한 선교사들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유로 세종대왕이 선교사를 만난다면 기뻐하며 감사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천 냥 빚이 생긴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 실수를 해서 엄청난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글 창제 당시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천대를 받았던 한글이 성경으로 번역되어 널리 보급되고 읽혀졌을 뿐만 아니라 성스러운 책으로 귀히 여김을 받으니 그 글자 또한 귀히 존중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이러한 한글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누가 예견했겠는가? 이러한 시대에 걸맞게 은어나 비속어보다는 아름다운 한글이 더 널리 보급되고 천국의 언어를 담아 널리 널리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