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아들
2021년 09월 27일(월) 02:00
조선은 국가의 안전과 왕권 강화를 위해 장자 계승 원칙을 견지했다. 세자는 보위를 계승하고 종묘사직을 보존해야 하는 중요한 존재였다. 국가적 대사였던 세자 교육은 태교를 비롯해 유모 선발 및 유년기 인성 교육 등에 걸쳐 폭넓게 이루어졌다. 왕세자로 책봉된 뒤에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스승이 개인 교습을 실시했다.

조선 왕조 514년간 재위했던 왕은 모두 27명이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정통성 시비가 별로 없었던 임금은 고작 10명뿐이었다. 어렵게 왕세자가 되더라도 보위에 오르지 못하고 중도에 낙마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양녕대군은 15년간 세자 직위에 있었지만 거친 행실 탓에 동생인 충녕대군(세종)에게 보위를 양보해야 했다. 병자호란 당시 중국에 인질로 잡혀 갔던 소현세자는 귀국 후 병마로 세상을 떠났다. 사도세자는 당시 격화된 정쟁과 부친 영조와의 불화 탓에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했다.

시대와 관점은 다르겠지만 오늘날 대통령의 아들들도 종종 현실 정치라는 정쟁에 휘말리곤 한다. 최근 국민의힘은 미디어아티스트 문준용 씨가 양구군청 예산으로 지원금을 받은 데 대해 비판했다. “지자체·기관 등의 지원 과정에서 ‘대통령의 아들’이란 점이 작동했는지 국민은 궁금해 할 것”이라는 게 의혹의 요지였다. 그러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문화예술계는 수백 년에 걸쳐 확립된 고유의 논리와 체계·관습이 있다”며 “국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언급했다.

앞서 열거한 왕위에 오르지 못했던 조선의 세자들 중에도 뛰어난 예술인이거나 학문에 조예가 깊은 경우가 많았다. 양녕대군의 글씨, 소현세자의 선진 문물에 대한 안목, 어린 시절 사도세자의 학문적 자질 등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러나 이들은 정쟁과 시대적 불운에 휘말려 학문과 예술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말았다.

작가는 정치인이 아니다. ‘달걀 껍데기처럼 약해서 지켜 주어야 하는’ 게 예술 분야이며, 창의적 자율성은 결코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 아티스트라는 존재로 살아야 하는 대통령의 아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잣대와 미학적 평가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오늘의 정치 수준이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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