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남이 성지’
2021년 09월 07일(화) 02:00
전주IC에서 멀지 않은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마을은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자 마을이다. ‘초남이 성지’ 입구에는 ‘호남 천주교 발상지 1784년’이라 새겨진 돌비석이 있다. 1784년은 신유박해(1801년) 때 순교한 유항검(세례명: 아우구스티노,1756~1801)이 조선 최초의 영세자이자 천주교회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이승훈(베드로)으로부터 서울에서 세례를 받은 해를 뜻한다.

유항검은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어 ‘호남의 사도’로 불린다. 또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마을로 초청해 성사를 집행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는 신유박해 때 전주성 남문밖(현 전동성당)에서 부인과 큰아들 부부(유중철·이순이) 그리고 동생·제수·조카와 함께 순교했다.

조선 조정은 유항검의 생가를 ‘파가저택’하는 형벌까지 내렸다. 파가저택은 중죄인의 집을 헐어 버리고 땅을 파 연못으로 만들어 버리는 벌이다. 성지에 들어서면 작은 연못과 함께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분수와 십자가 예수상이 눈길을 끈다.

18~19세기 초에 조선 지식인을 비롯해 중인과 천민들이 천주교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유는 뭘까? 재야 역사학자였던 고(故) 이이화 선생은 ‘한국사 이야기’에서 크게 네 가지로 설명한다. 신문화 수용 차원의 민중종교 운동, 중인과 양인 중심의 지도층 성격, 성경의 한글 번역(신도 대중화에 기여), 천주교의 평등사상과 새로운 가치관 등이 그것이다.

신해박해(1791년)와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순교자 3인(윤지충·권상연·윤지헌)의 유해가 최근 ‘초남이 성지’ 인근 바우배기에서 발견됐다. 바우배기에는 유항검·신희 부부의 묘소가 1914년 전주 치명자산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부장유물(지석)과 DNA 분석을 통해 순교자의 유해임을 확인했다. 이번 순교자들의 유해 발굴 소식은 200여 년 전 새로운 세상을 꿈꾸면서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목숨을 바쳤던 순교자들의 거룩한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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