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 황성호 신부
2021년 09월 03일(금) 06:00 가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나는 존중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 보았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있기까지는 스스로의 능력보다 다른 사람들의 많은 도움이 작용했을 것이다. 부모님을 통해서 무상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배우고 성장하도록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도움과 지지를 받고 성장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도움을 주었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5장 11절에서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
서로를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내가 그만큼 존중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이 존중감이 없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무한 경쟁만 펼쳐질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도 떠오른다. 결국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지난주 우리나라로 이송된 아프간인 390여 명에 대한 소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일본은 한 명도 이송하지 못했고 한국만 성공했으며 다른 많은 나라들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를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의 시각만으로 비교한다. 하지만 우리의 관점을 바꿔 보자. 성공과 실패의 시각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통해 이송작전이 준비되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공군은 버스 안에서 죽음의 위험을 뚫고 겨우 카불 공항에 도착한 아이들을 위해 사탕을 준비했다. 100여 명이나 되는 영유아들을 위해 분유와 젖병을 준비했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아이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인형을 나눠 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사람을 위해 이렇게 섬세하고 면밀하게 준비를 했다니 놀랍다. 이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였고, 우리 정부를 도와준 이들에 대한 본질적인 예의였다. 그래서 아프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한국군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정부와 군인들의 쉽지 않았던 이번 작전에는 사람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존중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가톨릭교회는 매년 9월 마지막 주간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정하여 이주 노동자들과 난민 그리고 실향민들을 기억하고 있다. 2020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문에서 이주민과 난민 그리고 실향민을 위해 기도하자고 초대하시면서 이들을 받아들이는 네 가지 방법을 제안하셨다. 교황은 담화문에서 헤로데의 폭정을 피해 이집트로 떠나셨던 아기 예수님을 이야기하시며 국내의 실향민을 환대하고, 보호하고, 증진하고, 통합해 가자고 말씀하신 것이다.
‘받아들임’은 서로를 풍성하게 하고 갇혀 있던 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우리를 더욱 성장하도록 이끈다. ‘받아들임’은 엄청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외국인인 이주민과 난민 그리고 이번 아프간 사람들을 받아들인 우리 또한 커다란 가능성을 갖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환대, 보호, 증진, 통합’ 이 네 가지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또한 교황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강조하셨다. 이번 아프간 사람들을 구출한 작전은 우리 정부를 도운 이들을 존중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의 실천이었다.
예수의 비유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더 깊게 다가온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재산 및 온 마음을 바쳐 치유해 줌으로써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상황, 점점 더 어려워지는 우리들의 관계성, 이기적으로 변해 버린 우리의 사회, 탐욕에 젖어 누가 힘들어도 무관심해지는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매년 9월 마지막 주간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정하여 이주 노동자들과 난민 그리고 실향민들을 기억하고 있다. 2020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문에서 이주민과 난민 그리고 실향민을 위해 기도하자고 초대하시면서 이들을 받아들이는 네 가지 방법을 제안하셨다. 교황은 담화문에서 헤로데의 폭정을 피해 이집트로 떠나셨던 아기 예수님을 이야기하시며 국내의 실향민을 환대하고, 보호하고, 증진하고, 통합해 가자고 말씀하신 것이다.
‘받아들임’은 서로를 풍성하게 하고 갇혀 있던 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우리를 더욱 성장하도록 이끈다. ‘받아들임’은 엄청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외국인인 이주민과 난민 그리고 이번 아프간 사람들을 받아들인 우리 또한 커다란 가능성을 갖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환대, 보호, 증진, 통합’ 이 네 가지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또한 교황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강조하셨다. 이번 아프간 사람들을 구출한 작전은 우리 정부를 도운 이들을 존중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의 실천이었다.
예수의 비유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더 깊게 다가온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재산 및 온 마음을 바쳐 치유해 줌으로써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상황, 점점 더 어려워지는 우리들의 관계성, 이기적으로 변해 버린 우리의 사회, 탐욕에 젖어 누가 힘들어도 무관심해지는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