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천사’
2021년 08월 20일(금) 02:00 가가
훌륭한 간호사 하면 흔히 나이팅게일을 떠올릴 것이지만, 또 한 사람 메리 시콜이라는 간호사도 있다. 이 두 사람은 크림전쟁(1853~1856) 당시 가장 유명했던 간호사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팅게일이 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병들을 치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나이팅게일은 환자 치료보다는 병원 행정 및 위생 시스템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철저한 병원 관리로 부상병들의 사망률을 42%에서 2%까지 줄였다. 물론 환자에 대한 열정도 커 밤마다 등불을 들고 병실을 돌았다. 이 모습이 ‘타임스’에 보도되면서 나이팅게일은 ‘등불을 든 여인’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근무지는 전장과 200㎞ 이상 떨어진 후방 병원으로, 전쟁의 직접적인 위협은 그다지 크지 않은 곳이었다.
영국의 명문가 출신인 나이팅게일과 달리 메리 시콜은 영국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에서 영국인 남성과 흑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물라토’(혼혈)였다. 메리 시콜은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 나라인 영국의 간호사로 자원했지만 식민지 주민이라는 이유로 배제됐다. 나이팅게일 간호단에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역시 탈락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비로 전장 가운데에 치료소를 설치해 환자를 돌봤다. 최전선에서 불과 8㎞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직접 치료소를 설치해 1차 부상자를 치료했다. 이 때문에 부상병들은 그녀를 ‘마더 메리’라고 불렀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부상자 관리로 사망률을 크게 낮춘 그녀를 영국군은 ‘전장의 천사’라 칭송했다.
전쟁이 끝난 후 나이팅게일은 지금까지도 ‘백의의 천사’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흑인인 메리의 존재는 나이팅게일에 가려져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영국·터키·프랑스 등 3개국에서 훈장을 받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다 150년이 지난 2000년 우연한 기회에 메리의 초상화가 발견되면서 그녀의 존재가 다시 부각되기도 했다.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무료함을 달래 주기 위해 할머니와 고스톱을 치는 방호복 차림의 간호사 사진이 보도돼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점점 지쳐 가는 방역 최전선의 간호사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겠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많은 사람들은 나이팅게일이 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병들을 치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나이팅게일은 환자 치료보다는 병원 행정 및 위생 시스템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철저한 병원 관리로 부상병들의 사망률을 42%에서 2%까지 줄였다. 물론 환자에 대한 열정도 커 밤마다 등불을 들고 병실을 돌았다. 이 모습이 ‘타임스’에 보도되면서 나이팅게일은 ‘등불을 든 여인’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근무지는 전장과 200㎞ 이상 떨어진 후방 병원으로, 전쟁의 직접적인 위협은 그다지 크지 않은 곳이었다.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무료함을 달래 주기 위해 할머니와 고스톱을 치는 방호복 차림의 간호사 사진이 보도돼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점점 지쳐 가는 방역 최전선의 간호사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겠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