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먹고 합시다'] 숟가락 젓가락 생각
2021년 07월 29일(목) 05:00 가가
어렸을 때는 밥상머리에 앉는 일이 고역이었다. 왼손잡이라 못마땅해 하는 어른들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절에는 억지로라도 수저를 오른손으로 바꿔 잡기도 했다. 그래 봐야 나중에 머리가 굵어지면서 슬그머니 원래 손으로 옮겨 갔지만. 대신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 배웠다. 젓가락질은 끝부분이 맵시 있게 다물어지도록 직선·상하 운동을 잘해야 하는데, 왼손 오른손 왔다 갔다 하다가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었다.
서양에 나가서 초밥집이나 중국집에 들를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실내의 손님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자, 저 동양인이(오리지널 아닌가!) 과연 젓가락질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하는 듯했다. 아무리 젓가락질 잘 못 하는 사람일지언정, 서양인보다 못 할소냐? 의지의 힘으로 멋져 보이게 젓가락질을 하곤 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런 식당에서는 대개 나무젓가락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젓가락의 나라인 아시아에서 숟가락이 ‘주’(主)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알게 되었다. 일본은 숟가락이 있었지만 점차 사용 빈도가 줄다가 일상의 정찬에서 아예 사라져 버렸다. 한 번은 일본의 식당에서 스푼을 달라니까 당황하면서 찻숟가락을 주는 식당도 있었다. 손님용 숟가락은 아예 없었다. 일본인은 국물도 젓가락만으로 먹는다. 어떻게? 들고 마시면서 건더기는 젓가락으로 끌어와 입으로 넘기는 방식을 쓴다.
일본의 식사에서 숟가락이 나오는 경우는 대부분 외래 음식이다. 카레, 라멘(국물 떠먹기용), 한식, 스파게티 같은 음식에서만 숟가락이 나온다. 라멘에 숟가락이 딸려 나오는 건 그것이 중국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특별히 숟가락이 주가 되었을까.
우리는 지금 스테인리스 수저를 쓴다. 99퍼센트다. 외식할 때는 종종 나무젓가락을 만날 수 있었는데 폐기물의 부담으로 일회용을 금지하면서 만나기 어렵게 됐다.(지금은 코로나로 임시 사용이 가능하다) 스테인리스가 선보이기 전에는 양은 젓가락도 있었다. 양은은 일제강점기 무렵에 들어온 이후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가벼운 데다가 세척도 편하고 내구성도 좋았다. 오죽하면 양은(洋銀)이었겠는가. 그야말로 은 대우를 해 주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아주 싼 금속이 되고 말았지만.
그때 양은과 경쟁하던 것이 놋쇠였다. 무겁고 다루기 힘들지만 오랫동안 ‘있는 집’ ‘양반집’의 식기였다. 그러니 사람들이 아껴 사용할 만했다. 지금도 제사상에는 놋쇠 수저를 쓰는 집이 많다. 제사는 대체로 고인에 대한 예우가 우선이며, 고래의 것을 즐겨 쓴다. 놋쇠는 부귀의 상징인 금색이어서 우리 선조들이 좋아했다는 말도 있다.
놋쇠가 일반 민가까지 널리 퍼진 것은 조선 후기다. 신분 세탁(?)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개국 초기 극소수였던 양반이 70퍼센트를 넘나들 정도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양반이 되었으면 나무 수저 대신에 놋쇠를 써야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너도나도 수저만은 놋쇠를 쓰는 게 당연시되지 않았을까. 왜 우리 민족만 동양의 메이저 삼국 중에서 금속 수저를 압도적으로 쓰고 있는지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분야는 민속학이나 사학에서도 뚜렷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조까지 수많은 유물 중에서 수저도 전시되어 있다. 모든 수저가 금속이다. 나무는 삭아서 현재까지 남아서 출토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귀한 출토품이 아니다. 또 그 시대에는 수저의 재료와 사용으로 부귀와 계층을 나누었다. 유물이 출토되는 것은 대부분 왕가의 터라 귀한 수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은 앞서 말한 대로 현재 전통적인 밥상에 수저가 아예 없지만, 과거 귀족들은 숟가락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무나 숟가락을 쓸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으로 자연스레 숟가락이 없어졌을 수도 있다.
젓가락·숟가락의 ‘가락’은 인체의 손가락처럼 ‘가늘고 긴 토막’을 의미한다. 수저는 인체의 일부처럼 부리는 도구였다. 그만큼 애정을 담아 다루었다. 집안의 어른부터 아이까지 각자의 수저가 대개 있어서 각별히 구별하고 공들여 대했다. 제사상에서 어른들의 손이 떨리는 침묵의 순간은 메(밥)를 덜어 탕에 넣거나, 국수와 찬을 집어 옮기는 동작을 할 때다. 고인의 영혼이 깃든 수저라 긴장해서일 게다.
숟가락을 우선시 했던 만큼 우리나라의 숟가락은 아주 정교하게 발달했다. 어떤 음식을 자를 때 쓸 수 있도록 양옆에 날이 있다. 자세히 보면 역시 찬을 찍어 자를 수 있도록 맨 위 정수리 부분은 봉긋이 예각으로 솟아 있다. 수저의 머리 부분을 인체에 대입하여 사람의 정수리가 솟은 것을 모방하여 제작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새 나오는 숟가락은 이런 기능이 점차 사라져서인지 아예 날도 정수리도 없는 게 많다.
밥이 찰기가 많아지고, 밥상 예절도 유야무야되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젓가락만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이 많다. 식당에 숟가락을 같이 진열해 놓아도 손도 안 대고 식사를 마친다. 세상이 변하는 것을 인력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 것의 진수를 담고 있는 숟가락이 점차 홀대를 받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 감출 수 없다. <음식 칼럼니스트>
우리는 지금 스테인리스 수저를 쓴다. 99퍼센트다. 외식할 때는 종종 나무젓가락을 만날 수 있었는데 폐기물의 부담으로 일회용을 금지하면서 만나기 어렵게 됐다.(지금은 코로나로 임시 사용이 가능하다) 스테인리스가 선보이기 전에는 양은 젓가락도 있었다. 양은은 일제강점기 무렵에 들어온 이후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가벼운 데다가 세척도 편하고 내구성도 좋았다. 오죽하면 양은(洋銀)이었겠는가. 그야말로 은 대우를 해 주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아주 싼 금속이 되고 말았지만.
그때 양은과 경쟁하던 것이 놋쇠였다. 무겁고 다루기 힘들지만 오랫동안 ‘있는 집’ ‘양반집’의 식기였다. 그러니 사람들이 아껴 사용할 만했다. 지금도 제사상에는 놋쇠 수저를 쓰는 집이 많다. 제사는 대체로 고인에 대한 예우가 우선이며, 고래의 것을 즐겨 쓴다. 놋쇠는 부귀의 상징인 금색이어서 우리 선조들이 좋아했다는 말도 있다.
놋쇠가 일반 민가까지 널리 퍼진 것은 조선 후기다. 신분 세탁(?)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개국 초기 극소수였던 양반이 70퍼센트를 넘나들 정도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양반이 되었으면 나무 수저 대신에 놋쇠를 써야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너도나도 수저만은 놋쇠를 쓰는 게 당연시되지 않았을까. 왜 우리 민족만 동양의 메이저 삼국 중에서 금속 수저를 압도적으로 쓰고 있는지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분야는 민속학이나 사학에서도 뚜렷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조까지 수많은 유물 중에서 수저도 전시되어 있다. 모든 수저가 금속이다. 나무는 삭아서 현재까지 남아서 출토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귀한 출토품이 아니다. 또 그 시대에는 수저의 재료와 사용으로 부귀와 계층을 나누었다. 유물이 출토되는 것은 대부분 왕가의 터라 귀한 수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은 앞서 말한 대로 현재 전통적인 밥상에 수저가 아예 없지만, 과거 귀족들은 숟가락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무나 숟가락을 쓸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으로 자연스레 숟가락이 없어졌을 수도 있다.
젓가락·숟가락의 ‘가락’은 인체의 손가락처럼 ‘가늘고 긴 토막’을 의미한다. 수저는 인체의 일부처럼 부리는 도구였다. 그만큼 애정을 담아 다루었다. 집안의 어른부터 아이까지 각자의 수저가 대개 있어서 각별히 구별하고 공들여 대했다. 제사상에서 어른들의 손이 떨리는 침묵의 순간은 메(밥)를 덜어 탕에 넣거나, 국수와 찬을 집어 옮기는 동작을 할 때다. 고인의 영혼이 깃든 수저라 긴장해서일 게다.
숟가락을 우선시 했던 만큼 우리나라의 숟가락은 아주 정교하게 발달했다. 어떤 음식을 자를 때 쓸 수 있도록 양옆에 날이 있다. 자세히 보면 역시 찬을 찍어 자를 수 있도록 맨 위 정수리 부분은 봉긋이 예각으로 솟아 있다. 수저의 머리 부분을 인체에 대입하여 사람의 정수리가 솟은 것을 모방하여 제작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새 나오는 숟가락은 이런 기능이 점차 사라져서인지 아예 날도 정수리도 없는 게 많다.
밥이 찰기가 많아지고, 밥상 예절도 유야무야되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젓가락만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이 많다. 식당에 숟가락을 같이 진열해 놓아도 손도 안 대고 식사를 마친다. 세상이 변하는 것을 인력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 것의 진수를 담고 있는 숟가락이 점차 홀대를 받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 감출 수 없다.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