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남원이 기문가야라고?
2021년 07월 22일(목) 02:00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 가야사를 국정 100대 과제의 하나로 선정했을 때 대부분의 국민들은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재 이 나라 역사학계를 장악한 강단사학자들의 풍토로 봐서 자칫 일본 극우파들의 임나일본부를 끌어들이는 선전장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본성’(加耶本性) 전시회는 이런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임나일본부설을 버젓이 끌어들인 것이다.

이 전시회의 연표 설명 중에는 “369년, 가야 7국(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백제·왜 연합의 공격을 받음(서기)”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말한 ‘금관·아라·고령·대·성산·소가야’의 가야 6국은 모두 사라지고 엉뚱한 가야 7국의 이름이 나열되었다. 이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경전인 ‘일본서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일본서기는 서기 369년 야마토왜의 신공(神功)왕후가 “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7국을 평정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것이 고대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핵심 내용인데,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이 국고를 들여 선전했던 것이다.

백제 멸망 약 60여년 후인 서기 720년에 편찬한 일본서기는 일부러 거짓말하기로 마음먹고 쓴 역사서로 유명하다. 역사서의 기초인 연대부터 맞지 않는다. 야마토왜(大和倭)는 빨라야 3세기 말에 시작하는데 일본서기는 그보다 1천여 년 전인 서기전 660년에 시작하는 것으로 그려 놨으니 연대가 맞을 리 없다. 또한 백제의 제후국이었던 야마토왜를 상국(上國) 즉 황제국으로 조작하고,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를 모두 야마토왜의 속국으로 격하시켰다.

그래서 메이지(明治) 이전까지는 일본인 학자들도 일본서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통감’ 같은 한국의 역사서와 비교해서 맞는 것만 인정해 왔다. 그러다가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경성제대 교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삼국사기는 가짜고 일본서기가 진짜라고 우겼는데 이 억지가 조선총독부의 적극 지원으로 힘을 얻었고 아직도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은 ‘삼국사기 불신론’을 추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방 후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 상전들의 칭찬을 받으며 한국사를 깎아내리던 이병도·신석호 등이 남한 강단사학계를 장악하면서 지금까지 이 분야는 친일청산의 무풍지대가 되었다. 그러나 차마 일본서기까지는 내놓고 인용하지 못했는데, 해방 70여 년이 넘도록 단죄되기는커녕 막강한 친일 카르텔에 의해 주류 행세를 하다 보니까 이제 일본서기를 공개적으로 칭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제대 교수 이영식은 “현대적 국가 의식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일본서기로 돌아가는 일이다.… 일본서기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도 중요하다”(강만길 외 지음, ‘우리 역사를 의심한다’)라면서 일본서기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봐야 한다고 선언했다. 일본서기의 시각으로 보면 고구려·백제·신라·가야는 모두 야마토왜의 속국이 된다.

1895년 경복궁 담을 넘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라는 낭인 야쿠자가 있었다. 그는 ‘일본서기 조선지명고’에서 임나가 경상남북도뿐만 아니라 충청·전라도까지 차지했다고 우겼는데, 이 주장에 지금 막대한 대한민국 국고가 쓰이고 있는 중이다. 앞의 이마니시 류는 ‘기문·반파고’(己汶伴跛考, 1922)에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문(己汶)을 전라도 남원이라고 우겼는데, 현재 남원에서 ‘기문가야’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기문가야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면 일본 극우파들은 욱일기를 휘날리며 축하 파티를 벌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줄도산에 내몰리고, 식량 부족으로 북한 형제들의 기아 사태 재발이 우려되는 상황을 악용해 이런 작태를 버젓이 자행하는 것 자체가 범죄행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일까?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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