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나눔-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1년 07월 02일(금) 01:50 가가
깨달음이란 하나임을 아는 것이다. 원불교 정전에 보면 ‘먼저 마땅히 사람도 없고 금수도 없고 초목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 살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면 누구나 살지 못할 것은 다 인증할 것이다’하였다. 이런 마음으로 살다 보면 서로 사랑하고 즐거워하여 나 자신도 옹호와 우대를 받고 개인과 개인끼리는 사랑할 것이고 가정과 가정끼리는 친목할 것이다. 또한 사회와 사회끼리는 상통하고 국가와 국가끼리는 평화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이기에 이웃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자리이타(自利利他)로써 함께한다.
중생의 병이 보살의 아픔이고 중생의 행복이 보살의 기쁨이다. 사은(四恩: 원불교 교리의 신앙과 수행의 두 문 가운데 신앙문에 속하는 천지은(天地恩)·부모은(父母恩)·동포은(同胞恩)·법률은(法律恩)을 말함)의 큰 은혜를 믿는 우리로서는 언제나 보은(報恩)의 도리를 실천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하겠지만 지금은 더욱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보살 정신을 발현해야 할 때이다. 코로나19와 경제적 어려움, 이념 갈등으로 인하여 날로 늘어만 가는 실업자들의 문제,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 등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일들이 쌓여 가고 있다. 이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행히 원불교에서는 실직자를 위한 쉼터를 마련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취업 정보도 제공하고 무료 급식도 실시하고 있다. 원불교 종로교당에서도 행정기관의 협조를 받아 실직자를 돕는 좋은 프로그램을 실시해 은혜를 나누고 있다. 영광 영산성지와 수계농원, 만덕산농원 등에 마련한 귀농 교육과정도 나눔의 정신을 효율화 할 수 있는 산업이다. 선한 마음들이 실제적 도움으로 연결되려면 이러한 구체성 있는 사업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 생각할 여유가 있느냐’고 외면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의 불안이 나의 가정에 위협이 되고 사회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콩 한 쪽도 나눠먹던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6·25 전쟁 이후 최대의 환란이라 하지만 우리에게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한강의 기적을 이룬 강인한 의지가 있고 기반시설과 생산설비가 갖추어져 있다.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총량적으로 보면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서로가 힘이 되어 밀어 주고 이끌어 준다면 어려운 일도 점점 쉬워지겠지만 서로 불신하고 원망하고 자기 몫만 챙기려 든다면 흑자 부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끝없는 욕망의 추구는 과소비와 환경 오염, 자원의 고갈,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지고 정신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경제적 위기를 당하여 ‘바루자 살리자 운동’은 그간 잘못된 생활태도를 바루고 허약해진 경제를 튼튼하게 하자는 운동이다. 은생어해 해생어은(恩生於害 害生於恩)의 이치를 바로 알면 오늘의 고통이 은혜가 될 수 있다. 경제구조의 조정과 함께 의식구조의 조정을 통해 영육이 쌍전하는 참 문명사회를 만들어 가는 기회로 삼는다면 지금의 이 시련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근원적 반성 없이 단순한 경제 회복에만 매달리다 보면 또 다른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많은 생각들이 공유되고 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철학들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러나 경제 회복에 급급한 나머지 그간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경제 정의를 위한 장치들을 해제하는 것은 염려해야 할 일이다. 기업의 구조조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식구조의 조정이다. 이러한 의식구조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서로 미워하고 서로 원수가 되어 개인과 개인끼리는 싸우게 되고 가정과 가정끼리 혐극(嫌隙)이 생기고 사회와 사회끼리는 반목(反目)이 되고 국가와 국가끼리는 평화를 보지 못하고 전쟁이라는 또 다른 비극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삶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며 근검하는 생활습관과 자리이타의 공동체 윤리를 세워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천지만물과도 상생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증진시켜 가야 한다. 이러한 안목으로 모든 일을 취사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눔은 불보살의 인격을 함양하는 일이며 경제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불공이고 보은이다.
끝없는 욕망의 추구는 과소비와 환경 오염, 자원의 고갈,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지고 정신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경제적 위기를 당하여 ‘바루자 살리자 운동’은 그간 잘못된 생활태도를 바루고 허약해진 경제를 튼튼하게 하자는 운동이다. 은생어해 해생어은(恩生於害 害生於恩)의 이치를 바로 알면 오늘의 고통이 은혜가 될 수 있다. 경제구조의 조정과 함께 의식구조의 조정을 통해 영육이 쌍전하는 참 문명사회를 만들어 가는 기회로 삼는다면 지금의 이 시련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근원적 반성 없이 단순한 경제 회복에만 매달리다 보면 또 다른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많은 생각들이 공유되고 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철학들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러나 경제 회복에 급급한 나머지 그간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경제 정의를 위한 장치들을 해제하는 것은 염려해야 할 일이다. 기업의 구조조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식구조의 조정이다. 이러한 의식구조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서로 미워하고 서로 원수가 되어 개인과 개인끼리는 싸우게 되고 가정과 가정끼리 혐극(嫌隙)이 생기고 사회와 사회끼리는 반목(反目)이 되고 국가와 국가끼리는 평화를 보지 못하고 전쟁이라는 또 다른 비극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삶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며 근검하는 생활습관과 자리이타의 공동체 윤리를 세워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천지만물과도 상생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증진시켜 가야 한다. 이러한 안목으로 모든 일을 취사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눔은 불보살의 인격을 함양하는 일이며 경제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불공이고 보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