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신부.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은밀한 동맹
2021년 05월 14일(금) 06:10 가가
‘은밀하다’는 단어가 있다. “숨어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어서인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단어다. 왜냐하면 일부 사람 또는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밖에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동체인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과 어떤 것도 공유하거나 나누지 않으려는 철저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과 부를 독차지하는 이들 안에 짙게 깔린 특권의식과 이기주의는 이 ‘은밀하다’라는 단어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은밀함’은 인간 기본 상식이 통용되어야 하는 우리 사회에 자주 찬물을 끼얹는다. 생명의 소중함은 다 아는 사실이고, 각자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자주 이 생명은 쉽고 무심하게 짓밟혀 버리기도 한다. ‘은밀함’을 통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면서도 속내를 감추는 이들에게 우선시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을 공유하거나 절대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 생명의 불씨가 꺼지는 일이 발생해도 좀처럼 어떤 반응도 없다. 이들에게 소중한 것은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이득이 무엇이며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야 할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은밀함’을 추구하는 이들은 세상의 만연된 불의와 폭력, 불평등과 차별에 은밀히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참된 신앙인의 길을 제시하며, 우리 사회에 인간의 올바른 관계성을 제시한다. 이 비유는 어떤 율법 교사가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 예수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비유의 주인공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이 아니고, 강도를 당한 이를 보고 반대편으로 지나쳐 버린 사제와 레위인도 아니다. 주인공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생명을 구한 사마리아 사람이다. 예수는 강도를 만났던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고 율법 교사에게 묻는다. 율법 교사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는 율법 교사에게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고 하며 비유는 마무리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신의 저서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강조하면서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고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그냥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린 사제와 레위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노상 강도들’은 흔히 ‘반대쪽을 보면서 길을 지나쳐 가는’ 자들과 은밀히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사회를 이용하고 속여 소진시키려는 자들과, 자신이 순수한 비평가 역할을 해 나간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 체제와 자원들에 기생하여 잇속을 차리는 자들이 내통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세상의 부를 차지한 이들, 정치적인 지도자들, 지식인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인간 존재는 모두가 소중하며 특히 그 생명은 어느 누구라도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해관계에 따라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려서는 안된다. 자신에게만 몰두하여 다른 이들을 도외시하거나 이웃의 역경에 무관심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교황은 이를 ‘안타까운 위선의 존재’와 ‘완벽한 악습의 고리에 가두는 것’이라 하시며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겉치레·변장이 벗겨지도록 이끄신다.
가톨릭 신앙인은 우리의 천박한 자본주의와 생명을 수단과 같은 이용 가치로 짓밟는 어떤 관념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 주님이 원하셨던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신앙인이다.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것은 곧 이웃과 공유하고 나누어야 하는 인간 상식의 관계를 끊어 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탐욕, 천박한 돈의 노예, 부자와 기득권에게 굽실거림으로 나의 바람과 원의를 채우는 ‘은밀한 동맹’으로 자신을 속이지 말자. 다만 주어진 대리자의 삶, 봉사자의 삶, 희생의 삶, 사랑과 자비의 삶을 단순하게 살아가자. 이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교황은 세상의 부를 차지한 이들, 정치적인 지도자들, 지식인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인간 존재는 모두가 소중하며 특히 그 생명은 어느 누구라도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해관계에 따라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려서는 안된다. 자신에게만 몰두하여 다른 이들을 도외시하거나 이웃의 역경에 무관심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교황은 이를 ‘안타까운 위선의 존재’와 ‘완벽한 악습의 고리에 가두는 것’이라 하시며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겉치레·변장이 벗겨지도록 이끄신다.
가톨릭 신앙인은 우리의 천박한 자본주의와 생명을 수단과 같은 이용 가치로 짓밟는 어떤 관념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 주님이 원하셨던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신앙인이다.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것은 곧 이웃과 공유하고 나누어야 하는 인간 상식의 관계를 끊어 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탐욕, 천박한 돈의 노예, 부자와 기득권에게 굽실거림으로 나의 바람과 원의를 채우는 ‘은밀한 동맹’으로 자신을 속이지 말자. 다만 주어진 대리자의 삶, 봉사자의 삶, 희생의 삶, 사랑과 자비의 삶을 단순하게 살아가자. 이것이 신앙인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