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홍익인간이 불편한 국회의원들
2021년 04월 28일(수) 23:00
민형배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12명 의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자구(字句)를 삭제한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한때 큰 소동이 일었다. 교육기본법 제2조는 교육 이념을 천명한 것으로 헌법으로 치면 전문인 셈인데 다음과 같이 돼 있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조항에서 ‘홍익인간’을 빼고 “모든 시민으로 하여금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시민…” 운운하는 구절로 대치하려고 했다.

이런 개정안이 제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소동이 벌어졌고, 항의에 놀란 의원들이 개정안을 철회했지만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홍익인간’과 ‘자유와 평등’이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님에도 굳이 이를 삭제하려고 한 데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교육부에서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에 홍익인간 삭제를 연구하라는 용역을 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지난 4년간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식민사학자들과 한 몸이 되어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을 계승하려는 학자들을 탄압했던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말은 해 왔지만 행동은 거꾸로였다. 임시정부 학무국장 김승학 선생을 필두로 생존 독립운동가들이 피눈물로 쓴 ‘한국독립사’ 현대화 사업을 강제로 중단시킨 것을 필두로 ‘역사 적폐’ 청산을 바라는 촛불시민들의 열망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4년간 계속해 왔다. 이런 판국에 ‘홍익인간’을 삭제하는 교육기본법 개악안이 제출되자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이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처럼 말을 해 왔는데, 홍익인간은 1941년 11월 반포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 나오는 이념이다. 임시정부는 “우리나라의 건국강령은 삼균주의(三均主義)에 역사적 근거를 두었다”면서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는 ‘우리 민족이 지킬 바 최고 공리(公理)’라고 선언했다.

임정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바란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고, ‘홍익인간’이라는 휘호도 썼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김 전 대통령은 1982년의 ‘옥중서신’에서 “홍익인간의 이상도 공자의 인, 맹자의 왕도정치, 오늘의 민주주의, 사회 정의와 연결된 정신을 보게 됩니다”라고 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인내천’(人乃天)이란 휘호를 좋아했던 이유도 홍익인간 사상이 우리의 민족정신이고 그 원칙이 동학이라는 토착종교를 낳았는데, 최제우가 인내천을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었다,(망명 시절 하버드대 연설)

사실 민주당이 뿌리로 삼는 한민당은 반민족 친일 지주 정당이었다. 그나마 김대중·김영삼 두 전 대통령의 지난한 민주화 투쟁과 민족통일을 위한 헌신 덕분에 친일 지주 정당의 딱지를 떼고 민족정당 반열에 오를 뻔했다. 그러나 이른바 586들이 당의 주류가 되면서 민족을 부정하는 사고가 만연하다가 급기야 ‘홍익인간’ 삭제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08년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란 논설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맞설 유일한 무기는 민족주의라고 설파했다. 한국 독립운동사는 좌우를 막론하고 모두 민족주의에서 출발한다. 한데 이러한 ‘민족’을 버리려는 정당에게 어찌 미래가 있겠는가? 이제 민주당의 순기능은 다한 것인가? 지방선거 참패의 근본 원인이 바로 이런 정신세계에 있는 것이다.

순국선열들이 목숨 걸고 지켜 냈던 민족의 가치를 민주당 의원들이 지우려는 작금의 작태가 갈 길 잃은 민주당의 현주소를 잘 말해 준다. 여전히 이 나라에서 믿을 것은 역사의 주체이자 민족의 주체인 민중밖에 없다.

<신한대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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